세 종교 이야기

저자
홍익희 지음
출판사
행성:B잎새 | 2014-08-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비교분석을 통해 틀림이 아닌 다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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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종교의 기원, 아브라함의 시대

 

2. 유대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1) 신과 맺은 영원한 계약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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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  셈 : 히브리 민족, 시리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몽골

|          함 : 아프라카계, 가나안

|          야벳 - 코카서스 아리아

아브라함

    시대의 역사적 배경

       수메르 문명과 이집트 문명  기원전 4500년경

       아키드 왕국 - 수메르 문명 정복

       아키드 왕국 멸망하자 수메르 문명 부흥기  - 우르남무 / 지구라트

       셈족,아모르인의 침입 . 수메르 멸망 -> 고 바빌로니아 건국

 

     기원전 2천년경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감

     야훼가 아브라함을 선택함  - 믿음의 조상 / 구원의 역사

     아브라함이 식솔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함

    

     아브라함의 두번째 아내 하갈 : 이스마엘 -> 아랍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첫번째 아내 사라 : 이삭 -> 유대인이 됨

  

     계약의 민족 / 계약의 징표 할례

     소돔과 고모라 불로 심판  :  아마도 문란했던 사회상과 다신교 사상에 대한 심판으로 보임

 

     하나님의 보편성이 담긴 약속 / 소명의식

     최초의 유대인 땅, 헤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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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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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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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12명의 아들을 둠 . 그중 11번째 요셉인 이집트로 쫓겨남. 그러나 이집트에서 높은 사람이 됨

가나안 땅이 기근에 시달리자, 아버지와 11명의 형제들을 이집트로 불러들여 비옥한 땅에서 거주하게 해줌

당시 이집트는 힉소스 왕조 ( 힉소스 왕조가 히브리인이라고 증명하고 싶어하기도 하나 글쎄....)

히브리 왕조 멸망 후. 새로운 이집트 왕조 - '아모스'

새로운 왕조에서는 이방인인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삼음

 

2) 출애굽기  

 

람세스 2세  ( 기원전 1220년대 )

유대인 건설 노예를 이용해 수많은 건설 사업, 수많은 신전 건축물,  요즘 관강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 대부분이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 건설 됨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음

성경의 10가지 재앙 이후에야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줌

유월절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포로에서 해방된 날

엑소더스 : 유대인의 탈출 / 누룩없는 빵 / 만나

그러나 다시 이집트에서 이들을 추격 / 이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해의 기적- 바다가 2개로 갈리는..도 발생

 

거룩함- 유대인의 삶의 지표

지금도 유월절에는 엑소더스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누룩이 없는 빵 무교병을 먹는다.

누룩은 교만의 위험성 암시. 편안하고 안락한 삶 - 누룩없는 빵은 고난의 의미를 기억하기 위한 것, 

고난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신의 은혜이다.

 

40년에 걸친 탈출. 40이라는 숫자의 의미. 구원을 위한 정화의 기간.

 

십계명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40일 동안의 기다림 끝에 하나님으로 부터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동안.

유대인들은  바알신 ( 당시 가나안 민족들이 믿던 신), 금송아지를 만들었음

이를 본 모세가 금송아지를 부스고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음

( 아마 다신교 혹은 다른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얘기인듯 )

-> 십계명을 통해  유대인은 하느님의 백성이 됨. / 유대인의 속죄일 욤 키푸르

 

유대교의 본질, 율법 / 모세오경 / 토라 - 정의와 평등 

 

3. 유대교는 어떻게 종교로 자리잡았나

1) 예루살렘, 성지가 되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왔으나 ( 청동기 ) 

블레셋 사람들 ( 필리스티아 사람들- 철기 )이 남쪽에 있었음

 

기원전 11세기 -  이스라엘 왕 사울/다윗/솔로몬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 진압 성공

  다윗의 업적  : 수도이전 기원전 1100  헤브론 -> 예루살렘 / 성전 준비 / 하나님의 법궤(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

  솔로몬(평화) 왕  : 성전 건립 준공 완료

 

2) 북이스라엘 왕국, 우상숭배로 멸망하다

 기원전 926년  이스라엘이 2개의 나라로 나뉨 - 북이스라엘(우상숭배) / 유다 왕국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인들에 의해 멸망   ( 사마리아  = 아시리아 + 이스라엘의 혼혈 )

 

3) 1차이산, 유대인 방랑시대의 시작

예레미야의 예언

1차 바빌론 유배 -  기원전 601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속국이 됨

                         유대인들의 반발 /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 함락

2차 바빌론 유배 - 기원전 586년 네부카드네자르의 재공격 - 기원전 582년 유다왕국 멸망 

                         예루살렘 성전 초토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로 잡혀가고, 이 때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은 이집트 혹은 페니키아 등으로 피신

 

4) 유대교의 변화

 성전중심에서 율법 중심으로 - 성전 파괴-> 종교의 상실 -> 민족의 상실

  : 성전에 재물을 바치는 것보다 믿음을 갖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움직이는 종교.

 유대교에서 배움을 강조 배움도 신앙생활

"유다이즘' / 믿을 것은 오직 신앙 뿐/ 종교적 틀이 대부분 이시기에 형성 된다.

생활과 배움의 공동체 - 시너고그 / 랍비

 

5) 유대인의 귀환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 정복한 고레스(키루스2세)가 유대인으 귀환을 허용함

고레스 칙령 : 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의 포고로 유대인의 귀환이 허용됨

( 바빌론 유수기 기원전 586년~538년)

 

1차 귀환 : 기원전 537년 세바스살의 영도로 귀환 / 그러나 성전 건축에는 실패

 무역상으로 성공한 유대인들이 돈을 모아 귀환하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정착 경비를 도움 -> 시오니즘의 시작

 

2차 귀환 : 고레스왕의 아들 다리우스 왕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아 기원전 520년에 유대인들의 2차귀환 / 제룹바벨

신전 재건 사업 - 기원전 515년에 성전 봉헌식을 올림

 

조로아스터교 :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660년~538년 때의 사람

서른살에 계시를 받음 -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 = 지혜를 가진 주님. 밝음을 추구하는 광명의 신. 만물의 창조주 /배화교

회개/메시아의 재림/심판/천당과 지옥/부활과 같은 교리/ 선과 악의 이분법 ( 아후라 미즈다 <-> 아흐리만 )

=> 유대교에 영향을 줌

 

6) 유대교를 바로 세우다.

3차귀환 : 기원전 444년 에스라 - 영적개혁

4차귀환 : 기원전 428년 느헤미야 - 사회개혁

에스라개혁 : 이방인과 혼인 금지/ 토라의 편집완성/모세율법의 준수 ( 안식일 준수 )

 

안식일- 거룩히 지켜야 할 날

인식년과 희년 - 사회적 불평등을 정기적으로 해소

( 희년 : 50년이 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빚이 면제되며 모든 사람에게 해방이 선포됨 )

 

 이 후, 에수살렘( 히브리어 )과 바빌로( 아람어 )  두 곳에 유대인의 민족적 기틀이 마련됨

( # 아람어 : 히브리러와 함께 셈어족의 언어. 페르시아 공용어 )

항상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에 살았다 - 그리스로마시대의 알렉산드리아항구 - 이슬람 도시 바그다드. 코르도바 - 스페인 톨레도-암스테르담- 런던뉴욕

 

<<토라>>의 완성 : 모세오경이 중심이 됨 /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 완성 / 성문화되어 집대성

    <미드리시> 성경 주석

 에스라는 이스라엘을 율법 중심의 공동체러 만들었다. 국가나 성전등 모든 제도가 사라져도 이스라엘 존속 - 시너고그/ 회당

 

7) 유대교의 개혁과 복지제도   

 

8) 2차 이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 페르시아 정복 세계정복  / 헬레니즘 문화  ( 페르시아 + 그리스 )

->  오히려 유대인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었다.- 그리스, 실크로드.이집트 등.

-> 헬레니즘 문화 쇼크. 성격을 못읽는 유대인이 늘어나고, 정체성을 이어가기 힘들게 됨

 

참고 ) 헬레니즘 :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에서 부터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할때까지의 기간의 문화와 정신

                        그리스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헤브라이즘 :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만 숭배해야 하며 이 신의 백성된 자는 공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토라> 를 그리스어로 번역 :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서

70명에게 토라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함 -> 70본이 모두 동일한 내용

기원전 300년경에 만들어진 이 구약성서를 70인 역이라고 함  

-> 성경 출간 이후, 유대교에 관심이 있던 이교도들에게도 베스트셀러가 됨 -> 이교도 개종자가 3백만명에 달함...

 

( 참고 :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배를. 시리아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음)

 

기원전 200년경  셀레우코스 왕조가 유다를 정복

이스라엘 땅에도 헬레니즘 문화가 널리 퍼짐

헬러파와 정통파(하시디안) 의 대림 -> 정통파의 반란 -> 당시 지배자 안티오코스 4세의 진압 ( 자치권 박탈, 탄압정책)

 

안키오코스의 유대인 말살 정책

- 유대인 종교의식 금지. 이교도를 예루살렘에 이주시킴. 안식일, 할례금지. 제우스 우상. 돼지를 제물로 바침.

<-> 마카비 반란 : 유대민족의 저항. 긴 싸움끝에 기원전 164년 반란군이 예루살렘을 되찾음

이스라엘에 하스모니안 왕조 ( 유대인 ) 이 다스림

   봉헌절 : 8일동안 신전에 불이 켜져있음을 기념 / 하누카 12월 하순 = 유대인의 크리스마스라고 불리움.

 

하시딤의 양분

  원래 :  정권은 요나단 / 대제사장직은 사두개파

  요나단이 정권과 대제사장직을 모두 독식

-> 요나단 지지자들 : 바리새파 / 반대파 : 에세네파

     바리새파는 사두개파를 보수자로 보고, 에세네파를 광신자로 보고 자신들이 진보주의자라고 믿음

     헬레니즘에 반대하며 종교는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음. 모세의 율법 재해석, 유대교에 융통성 부여

 

유대인 역사에서 로마 시대  헤롯시대

  - 기원전 64년 로마는 시리아를 멸망시킴 / 하스모니안 왕조는 로마의 보호를 받고 번영을 선택함

    기원전 63년  로마의 유다이주로 편입

  - 이 때부터 7세기 무슬림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할 때까지 7백년간 계속 됨

  - 로마제국 곳곳에 유대인 커뮤니티 존재 -> 이교도들 틈에 살면서 융합하기를 거절

  - 기원전 37년 로마제국은 팔레스타인 자치 통치를 하럭 : 헤롯 왕

  - 서기 6년 다시 이스라엘 땅을 유대 라는 이름의 속주로 삼음

 

유대인 종파들

  1) 헤롯왕과 사두개파 ( 사두가이파 ) - 사제 / 토라를 문자 그대로 해석.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어느세력과도 평화.

      토라를 문자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오히려 메시아의 관념도 없었고 부활도 믿지 않음 / 친로마

  2) 바리새파 ( 바리사이파 ) - 평신도, 보수적. 경전을 생활의 모든 분야에 적용, 반로마적 무력사용  반대

       메시아와 부활을 믿음

  3) 열심당 - 극단주의 / 무력으로라도 이스라엘을 정화해야 한다.

  4) 에세네파 : 속세를 버리고 황야와 사해 부근 쿰란에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하는 에세네파.

      시대의 끝.종말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  메시아가 오리라고 믿음.  

 

당시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과 세계시민의식을 가진 그리스. 로마 사람들 사이에 갈등 심화.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흥하는 유대인에 대한 배척. 피해의식?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갈등 폭팔

알렉사드리아의 폭동    ( 네로 황제 )

2차 이산, 대규모의 반란  66년

1차유대 로마전쟁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 공격. 무력으로 진압  예루살렘 성전 파과. 무차별 살육과 약탈

  유대인은 국가를 잃고 흩어져 세계 곳곳에 유대인 공동체 디아스 포라 시대 시작

 

  통곡의 벽 :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의 장군 타투스가 유대인과 그 후대에 로마이 힘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것

  로마의 개선문 : 예루살렘 정복일 기념하기 위한 것

  로마의 콜로세움 : 유대인 노예가 만들었음

 

마사다 전투 : 열심당의 마지막 봉기 960여명..72년

진압 후 로마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아예 추방.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가 금지됨.

 

바리새파 요하난이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야브네에 유대학교'예시바'를 세움

- 다른 종파 모두 없어지고 바리새파만 살아 남음

- 요하난은 여기서 토라를 가르쳐서 소수의 랍비를 배출 -> 유럽각지의 유대인 마을에 보냄 -> 시너고그

-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다왕국이 무력에 의해 망한다 할지라도 학교를 통해 유대교와 전통이 전승되기만 한다면

   유대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기 95년 전후로 박해가 극심해짐 - 요한계시록   잔인한 도미티아눗 황제 때.

서기 132년 유대인의 마지막 반란 코르바 반란 - 13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때

 

135년 코르바에 의한 봉기가 실패로 끝나면서 유대인들은 주권/영토/국민 모두를 잃어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유대인의 나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2차 이산 / 디아스포라

 

4. 기독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1) 열두제자의 활약

2) 원시기독교사상의 변화

  사도 바울

  보편적 기독교의 탄생

  유대교 - 구약 :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런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하겠다. 라는 약속

  기독교 - 신약 :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3)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초기 기독교

4) 기독교, 로마 제국의 국교로

   3세기 로마 제국의 혼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서로마 - 콘스탄티누스 황제

   동로마- 리키니우스 황제

   313년 밀라노 칙령 :  모든 종교에 평등권을 주는 정책에 합의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를 후원하면서 교회의 문제에 최고 권위를 가진자로 자처함

   신앙이나 교리 문제의 해결에 간섭

   종교회의나 공회의를 소집, 주재 

  

   기독교를 위해 국법을 개정

      - 십자가 형벌 폐지 축첩과 간음 금지. 이혼 제한.

      - 교회법을 국법과 같게 인정, 교회안의 분쟁에 대해 교직자가 내린 결정은 국각가 그 효력을 공인함

      - 일요일을 공식 휴일로 도입함

 

324년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을 통일

- 제국의 중심지가 동로마 제국으로 이동

-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 대신 옛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주장 / 이스라엘 땅을 성지로 간주

 

325년 제1회 니케아 공의회 -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 예수는 하나님 아버님과 본질적으로 동질의 신격을 갖는다고 의결 - 삼위일체설이 카톨릭의 정통으로 채택됨  

 

 

 

 

아리우스파 - 성자종속설 / 하나님은 호직 한분

알렉산더파(+아타나시우스) - 성자와 성부 하나님은 동일본질

유세비우스 절충안 -

콘스탄티누스 - 하나님과 성자예수는 동일본질이라고 선포함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일을 정식으로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꿈

 

유대교 박해 - 329년 기독교인들의 유대교로의 개종 금지 / 이스라엘 땅을 기독교함 / 유대인 박해....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출입할 수 없음

 

바티칸에 성 베드로 대 성당을 건축함   - 16세기에 미켈란젤로에 의해 재건축

콜로세움 옆의 개선문

 

로마제국의 수도 이전 -

   비잔티움을 종교도시로 대대적으로 개조  - 콘스탄티노플  / 성소피아 성당 건설

    로마는 단지 로마 카톨릭 교의 중심지 구실 정도만...

 

밀라노 교부 암브로시우스  - 테오도시우스 1세  : 교권이 황제의 권위 위에 자리 잡음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채택했다.

4세기 초 교회 언어가 라틴어로 바뀜 - 로마제국의 공식 언어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뀜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 분리

476년 서로마가 게르만 족에 의해 망함

 

5) 가톨릭의 분열과 종교개혁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의 분열

 

초대 교회 -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5개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활동. 하나의 교회 유지.

730년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가 성상 금지 - 성상이 우상숭배라고 생각함

로마교황청은 성상을 게르만 족에 대한 포교로 이용했었음. 성상 파괴에 반발함

 

1054년 로마 가톨릭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분리 되면서 본격적인 대립시작

콘스탄티노플의 포티오스 총대주교가 로마 교황을 파문하고, 로마의 움베르토 추기경이 동방 정교회에 파문장 던짐.

로마 교회  <-> 정교회 (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

 

발도파 - 길거리 전도  / 로마 교황청은 이들의 지위를 확인하기를 거부함 

          - 교회의 부패 비판

          - 1184 년 교황은 발도파를 파문함

          - 중산계급. 농민 평신도.

 

1229년 그레고리우스 9세 툴루즈 공의회 - 평신더의 성격읽기  번역, 소지 금지. 마녀재판. 카톨릭은 문맹을 권하는 종교가 됨

 

1517년 종교개혁 - 독일의 마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내용의 95개조 반박문 발표

부패한 교회를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새롭게 변혁시키고자 했던 신학운동.

프로테스탄트 운동

신부에게 결혼할 것을 권장.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인쇄 -> 누구나 성격을 읽을 수 있도록 함 /근대 독일어의 근간이 정리됨

유대인에게 개종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함 -> 유대인에 대한 공격....과격한 독설...

 

스위스 츠빙글리에 의한 종교개혁운동

 

제네바에서 칼뱅의 세속적 종교운동

   칼뱅은 상인들을 지지

   상인들 - 대부분 유대인,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세속적인 직업활동과 합리적이고 금욕적인 일상생활을 함께 영위해야 함을 강조

   -> 근대적인 직업관과 생활 윤리를 제공해 근대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

   5퍼센트 이자율 한도 내에서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일에 대해 찬성

   금융업을 기반으로 상업을 발전시킨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받아들여짐 .

 

칼뱅의 제자 낙스는 스코틀랜드에로 가서 개혁교회 신학을 전함 - 장로교

 

 

6) 유대교 입장에서 바라본 예수

 

6. 이슬람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 배경 ) 6세기 로마와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대립. 전쟁. 동서무역로의 중심이었던 비단길( 요르단 페트라 )이 위협받음

바닷길 ( 지중해 -> 홍해 -> 인도양 ) -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가 무역의 중심지가 됨.

원래 유목민들의 살던 아라비아 반도에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고, 갑작스러운 사회 경제적 변화 -> 새로운 질서가 필요해짐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메카 근처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음

다신교에 반대. 알라에게 절대 복종. 모든 신자는 평등하다.

622년 헤지라 - 야스리브로 피신. 기원원년.

혼란스러운 사회를 정리하고 혈열이나 지영이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기반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

아라비아인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국가 건설하고자 함

630년 무함마드는 메카를 정복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함

 

1) 이슬람교의 출현

610년 9월 무함마드 나이 40세에 히라산 동굴에서 사색 중 첫 계시를 받음.

그 뒤 12년 동안 하나님의 메세지인 코란을 받아서 외웠다. - 추종자들이 기록 <코란>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마지막 성경인 코란을 계시받아 이슬람교를 인류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선택된 최후의 예언자.

이슬람교는 무함마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에 의해 알려진 것 뿐 이라는 것이 이슬람교의 주장

창조주의 섭리에 따름으로써 인간이 현실과 내세에서 평화에 이르는 것이 이슬람교의 가장 큰 뜻

무슬림 - 복종하는 사람 / 이슬람 = 평화 ( 샬람 ) = 하나님께 순종함  = 창조주의 뜻과 율법에 복조함 - 평화 성취

 

메카 / 메디나 / 예루살렘 - 3개 성소

무함마드의 승천 - 예루살렘에서 승천함 - 성전산의 황금 돔 사원.

 

헤지라 - 메카에서 박해를 받던 무함마드가 야스리브 ( 야스립) 으로 이동  622년 9월 24일 : 마함마드 53세

이 역사적인 이동을 이슬람교에서는 헤지라 라고 함 /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다섯번씩 위대하다고 암송하며 절함..

야스립 - 메디나틋 나비 로 이름 바꿈. 메디나로 불리움

 

무함마드의 포교 - 제정일치 사회 추구 ( 종교과 세속적인 일 구분하지 않음 ) / 우상숭배 긐지/ 기도를 제도화/

                         아랍인은 아담과 하외의 후손 - 형재애와 평등사상 강조 - 뷰족간의 분쟁과 부열을 화해시켜 부족통일

 신정국가 체제인 '움마'건설 - 메디나 헌장 발표

지하드- 메카의 부유한 대상과 주변부족이나 유목민을 상대로 약탈전을 자행 - 아라비아 반도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

 

624년부터 627년 사이에 메카와 메디나 사이에 큰 전투.

628년 협약에 의해 무하메드의 메카 순례 - 메카에서 순례 거부 - 630년 10월 무하메드는 메카에 진입하여 항복을 받아냄

 

사라센 제국의 출발 - 아랍의 부족들이 무함마드에서 충성경약을 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약속

                              책의 백성인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특별세금 내면 신앙 유지 허락

    사라센 - 이슬람 제국의 별명 /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사용한 아라비에인에 대한 호칭

 

무함마드는 유대교에 대해 호의적, 자신이 받은 계시가 유대교 예언자들과 예수의 계시와 동일하다고 믿음. 유대교와 기독교가 자신을 참된 예언자로 인정해 줄 것으로 기대. 그래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관대햇음 -? 유대교와 움마의 공전을 인정

유대교의 안식일은 토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정함...

but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마함마드를 거부함  -> 유대인에 대한 보복 / 메디나 은근 유대인 공동체 점령

 

유대교의 종교적 역사를 부정하기 시작.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적자가 아니라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적자이며,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 신전을 건설하고 알라께 헌납했다고 주장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자손 곧 아랍인 가운데서 사도가 나오길 기도했으며, 기도의 응답으로 무함마드 자신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 - 아브라함이 믿었던 유일신교를 다시 회복.

카바신전 : 검은천으로 둘러싸인 육면체 모양. 무슬림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곳. - 메카..

  - 사라의 질투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지내던 곳이 메카. 잠잠 샘물.

 

631년 무함마드 - 메카 순례

632년 6월 8일 영면...

 

2) 이슬람교 경전

 

7. 이슬람교는 어떻게 종교로 자리잡았나?

 

( 그 시대의 역사 요약 )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프 시대 - 칼리프 : 이슬람 공동체의 최고 권력자이자 종교 지도자 / 4명의 칼리프

                            영토의 확장  - 팔레스티나, 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

세습 칼리프 시대 - 메카의 귀족 우마이야 가문

                            영토의 확정 - 동쪽으로 중앙아시아와 북인도. 서쪽으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

                            아랍어가 공용어. 화려한 모스크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기반으로 삼아 시리아의 아랍인 우대

 

시아파 -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사위 알리의 후손만이 칼리프가 될 수 있다.

수니파 - 우마이야 가문의 정통성을 인정

 

아바스 가문 왕조 - 우마이야 가문에 반기를 든 세력의 모임 750 년   시아파 + 페르시아인 / 수도 바그다드

 (8세기)                  아랍어가 공용어, 진정한 의미의 이슬람 제국

    but  후우마이야 왕조 라흐만 1세 - 이베리아 반도에 왕조 세움/이슬람+비잔티움+그리스 문화 / 코르도바 - 학문의도시

           시아파 - 북아프리카에 파티마 왕조 세움 / 카라이완, 카이로, 이슬람 신학의  

           페르시아계의 부와이 왕조 ( 10세기 ) -  바그다드 점령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만 갖는 상징적 존재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족이 몽골 초원에서 서쪽으로 계속 전진  / ㅅ토그릴 베그는 칼리프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얻음 ...

아나톨리아반도(지금 터키)를 차지하고, 비잔티움 황제 사로 잡움 -> 십자군 전쟁...

 

13세기 징키스칸의 손자 홀라구가 바그다드 점령.. 몽골세력..이슬람교로 개종..

 

 

1) 이슬람교의 팽창

 

정통 칼리프

가. 아부 바크르 - 동로마제국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

나. 우마르 - 635년 다마스카스, 638년 팔레스타인, 640년 시리아, 641년 이집트 점령. 이라크 무너짐.

                 642년 사산조 페르시아 격파하면서 이슬람 국가로 만들었다. ( 이란 페르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계기...)

                 알렉산드리아 점령 ( 동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 도시 )

다. 오스만 - 동쪽으로 인더스 강까지 / 서쪽으로 이집트까지  656년 암살당함

라, 알리 - 알리의 칼리프 인정 문제로 이슬람 분열 

           시아파 - 알리 지지, 혈통 중요 / 수니파 - 인품과 능력 중시

 

세습칼리프 시대

가.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  - 700년경 이베리아 반도까지 점령

 

721년 이슬람제국이 동쪽인도 국경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하게 되면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슬람교의 통치권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음.

 

[3인의 칼리프 체계]

8세기 아바스 가문 - 바그다드-원형시도시, 실크로드의 한 축  / 우마이야 왕조 학살  / 750~1258년

                            바그다드가 세계 최대의 도시...

 

이베리아 반도 - 후 우마이야왕조 ' 알 안다루스' 라는 국가- 수도 : 코르도바

   무슬림 통치하의 스페인 남부에는 도서관과 연구기간들이 번창했던 것에 비해 유럽의 다른 곳들은 대부문 문맹지역.

 

10세기 초 북부 아프리카 파티마 왕조

 

이베리아 반도의 우마이야 왕조는 기독교인들과 서고트 족의 인구 비율이 큰 점을 감안해 관용 정책을 폈음.

많은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 상업, 농업, 산업 발전.

코르도바는 인구 50만명의 초대형 도시

10세기 코르도바는 그리스 철학 연구, 대수학 발명, 아라비아 숫자,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법을 살려 배우고 수용. 고대 자연철학, 기하학과 수학의 발전, 비잔틴, 페르시아의 예술 흡수.  - 이슬람문화가 고대와 중세의 다리 역할.

종교적 관용성, . 무슬림 유대교 기독교신자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음.

 

11세기 우마이야 왕조 기울기 시작....

이슬람의 중심지는 북아프리카로 옮겨감 ...

 

이슬람을 받아들린 셀주크 투르크 족이 서쪽으로 거침없이 진출...

1037년 중동의 이슬람 제국은 망하고 셀주크 제국 만들게 됨

1071년 비잔틴 황제를 생포.

실크로드 장악

 

12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 발흥. -> 1146년 이슬림 근본주의자인 알모하드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하여 유대인 탄압 -> 유대인들은 북쪽 스페인 왕국으로 이동....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기반 쇠퇴....

1248년 이슬람 왕조는 남부로 밀려 그라나다에 알람브라 궁전을 짓고 250년 동안 유지...

 

( 자신의 반쪽을 버린 사람들 - 이기성 / 이거 읽기. 스페인 여행 및 역사 책 )

 

최근..수니파 근본주의 과격단체 : ISIS (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2014년 6월 29일 칼리프 제도의 신정일치 이슬람 국가를 건국

아랍세계를 이슬람주의 신성제국으로 만들고자 함

미국이 이라크 침략 후 세운 친미 시아파 정권에 반대하며 결성된 무장단체

2014년 6월 10일 이라크의 모술 ( 시리아 국경지대. 이라크 2번째 도시 ) 을 점령

 

8. 세종교는 무엇이 가고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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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년의 알렉산드리아, 옥시덴트와 오리엔트

 

가상의 0 년  - 기원전과 기원후의 개념 / 6세기에 도입 , 8세기에 최초 사용

바빌로니아인 - 태양이 가는 길에 놓은 별자리들을 열두개로 나누어 음력 열두달의 이름을 붙임

이집트 -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기원전 45년 1월 1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에 도입한 달력의 변형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 헬레니즘 시대

 - BC 338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정복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여러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지음  : 그중 이집트의 알렉사드리아는 학문의 중심지

 - 옥시덴트(서양) 과 오리엔트(동양) 의 중간에 있음

-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셀리우코스는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이집트를 지배.

 

- 도서관★

    최초의 사서 : 데메트리오스

    칼라마코스는 세계 최초로 주제별 도서목록인 피나ㅔ스를 설치

    수많은 필기사들이 있었음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은 소장하지 못한 문헌을 소장하기 위해 애씀 

    원본 빌려서 필사하고 필사본을 돌려줌  ㅋ / 고대 문명의 주축 역할

 

유클리드 - 기하학 원론

아르키메데스 - 유체정역학을 창시 / 미적분학의 토대를

에라토스테네스 - 지리학자이자 수학자 / 지구의 크기 재고, 1년의 기간 측정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 : 유클리드의 제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수학의 중심지 ( 기원전 6세기~기원후 6세기 )

오르페우스 신비주의 - 수의 신비로운 힘/ 구원의 관념 / 발상의 원리

피타고라스  

 

기원후 1세기 중반에 복음서 저자인 마가가 알렉산드리아에 그리스도교 전함

 :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사성적 유사성

P.275  ( 플라톤주의 먼저 공부하고 나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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