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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독서]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엄마를 부탁해 - 8점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며칠전에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언니들이 어렸을 적엔, 그러니까 외삼촌이 결혼하기 전엔 집에 자주 놀러와서 놀아주기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어주였다는데 나는 외삼촌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렇게 슬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쉰여섯이라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아프다 돌아가셨다는게 안쓰러웠고,
아직 제대도 안한 사촌 동생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렇게 장례식장이 있는 전주엘 갔고.
가는 내내 슬프게 흐느끼기만 할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나. 막상 장례식장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일어날 줄 몰랐다.
"이렇게 갈꺼면서. 우린...왜 그렇게 소원했어........"

엄마에게 삼촌은 각별했었더랬다.
엄마가 처녀적 회사생활을 할 때 6년동안 자취방에 데리고 있으면서
새벽밥 해서 학교 보내고, 양장점에 가서 교복 맞춰입히고....외할머니 대신 학교에 상담받으로 가고...
그런 외삼촌이 결혼하고, 먹고 살기 바빠지면서.
각자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전화통화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다가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그랬다. 엄마는 삼촌에겐 누나였고, 이모에겐 언니였고. 할머니에겐 딸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지독한 시집살이에. 5명이나 되는 아빠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아들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낳은 네명의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누나도. 언니도. 딸도 아닌 엄마가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그런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엄마는 아버지와 합동 생일을 치루시기 위해 서울을 올라오다 서울역에서 길을 잃었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엄마를 찾는 큰딸과 큰아들.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안함과 그리움. 나중에 나중에. 라고 지나갔던 순간들에 대한 아쉬운 감정들이
엄마와의, 아내와의 시간 속에서 곱씹어진다.
뒤늦에 후회도 해보고, 반성도 해보지만 당연하던, 내 인생의 배경화면 같았던 엄마.
그리고 아내는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결코 우울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니 삶이 그렇고, 내 삶이 그렇고, 우리 엄마들이 그렇고.,
그러니까 인생은 구질구질해. 라든가 그러니 엄마한테 지금이라도 잘해. 라고 우리를 다그치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았노라고 말한다.

엄마로서의 삶이 미치도록 후회되고, 그래서 내 삶을 잃어버렸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내 삶을 살았다고. 그렇게 말해준다.
계산하고, 계획하고 그랬던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아졌더라고.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화자다.
화자는 큰딸을 너로. 큰 아들을 그로, 남편을 당신으로 지칭하며 이야기를 한다. 소
설을 읽는 사람은 너가되고, 그가되고, 당신이 되어. 화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나는. 자신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하면서 앞서 들었던 이야기에서 느꼈던 죄책감을 가만히 씻어준다.

엄마는 사라졌다.
사라지면. 끝이다.
죽으면. 끝이다.
그 끝이 미치도록 가고 싶어. 지구가 멸망했음 좋겠다. 를 입에 달고 사는 나지만.
최소한 사는 동안은 진심으로 산다면, 나중에 덜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http://neopaper.tistory.com2008-12-28T13:13:01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