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지금 100분토론에서는 한참 그런것들로 떠들고 있고, 나는 지금 회계팀의 마감을 follow up 하고 있다.
처음은 유시민이었다.
오마이 뉴스에 유시민 인터뷰 기사가 실렸었다. 바리케이이트 치고 짱돌을 던지는 심정으로 어쩌고 했던.
유시민의 샤프함과. 냉정한 열정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고.
그저 머릿수에 불과했지만 개혁국민정당에 가입을 했다.
내 인생 첫 정당 가입.
주위에 한총련에 열심히인 동기들도 있었고, 민노당에 열심히인 친구들도 있었다.
한참 다함께가 대학에서 세력을 펼치고 있던 터라, 다함께에서 주체하는 강의도 꽤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냥. 쉽게 동조하기는 어려웠다.
도시 빈민도 아니면서, 노동자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내 애매한 정체성은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시민은 달랐다. 전적으로 그를 믿었고...그를 따라가다가
그분을 만났다. 진정성에 가슴이 떨렸다. 뒤늦게 현실의 불의에 눈을 뜨고,
사는대로 생각되는 바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이는 그를.
그리고 설레였다. 한걸음에 바뀔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대학 내내 읽었던 한국현대사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이런 저런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기뻤다. 진심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그러나 다들 그렇듯. 이라크 파병에서 흥미를 잃었다. FTA 협상에서 그랬다.
얼마 안남기고 헌법을 개헌하자고 일을 벌이는데....이 사람 업적에 집착하나 싶었다....
여전히 노동자 농민들은 죽었고. 여전히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모순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를 비판하는 건 쉬었다. 그리고 비판하는게 맞다. 그러면서 갈등이 표면화 되고
대안을 찾고, 그러면서 사회는 변하는 거니까.
그래도 어쨌거나 진심인 사람이 대통령인게 좋았다. 좋아서 그게 좋은 건줄 몰랐다.
안일했다. 그래서 MB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어.어.어. 아 맞다. 그랬구나. 싶었다.
이회창의 메인스트림 발언이 아무렇지 않던게 고작 2001년이었구나 싶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분이 세상에 안녕을 고했다.
그냥 달라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답답하고 깝깝한데..
아예 대 놓고....너 죽어라. 죽어라..하는데....죽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염치가 없는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사람들은 그의 사진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전에 소설 수업 들을 때, 선생님이 그랬다.
부모가 죽었을 때, 가장 슬프게 우는 자식이 어떤 자식인줄 아냐고.
- 살기 힘든 자식이라고. 그냥. 부모가 죽은 상황을 빌려 슬피 우는 거라고.
지금의 애도는. 너무 힘들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런 마음의 표현일게다.
MB가 범인이 아니다. 그는 그저 미친 제의의 대리인이요 상징이요 오브제 일뿐.
범인은 우리다.
'부자 되세요' 라는 광고 이후로 염치가 사라진 시대는 시작되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돈이 되고, 그게 당연하게 되었다.
효율성, 효과성, 합리성, 가외성, 형평성 의 다양한 판단 기준이 사라지고
돈 만 남았다.
교환 수단으로서의 돈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으로서의 돈.
무서운 세상이다.
슬피 울고, 다시 '그래. 피해보지 않기 위해 부자가 되자' 라고 하면
그건 지독히 이기적인 결론이다. 그건 딱 우리에게 MB 가 맞춤형 대통령이라는 증거다.
슬퍼하지 말자. 꺼이 꺼이 목놓아 우는 순간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로 나를 위로하지 말자.
그를 신격화해서 박제화 시키지 말자. 그는 그저 그저 우리 중의 한명이었던 것이고,
'부자되세요' 로 상징되는 2009년 대한민국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돈이 없어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한 어느 아버지처럼.
말기암 판정을 받고, 치매걸린 부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어떤 할아버지처럼.
다시 6월이다. 진검의 한판 승부를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
내가 내 삶을 어떤 기준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다.
미시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라는 낡은 구호에 기대지 않더라도
내 삶을 쪼는 것들에. 노.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자각하자.
잘가요.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