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을 보내는 주말.
한가로이 도서관에 앉아 가벼운 여행책을 몇권 쌓아두고
마치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떠날 사람처럼 지도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다.
여행에 대한 로망은. 아마도 어렸을 때 봤던 드라마에서 부터였던거 같다.
슬프고도 슬픈 운명의 덫에 걸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치마입고 구두를 신고, 긴 머리 흩날리며 눈물을 조용히 흘리며 걸어가던 주인공.
물론 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어린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저건 순전히 뻥이야. 모래밭을 구두를 신고 걸으면 슬픈거보다 불편한게 더 먼저 아니야?
그리고. 가방도 없으면서 옷은 맨날 갈아입고. 말도 안돼...
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드라마를 봤을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때는 훌쩍 떠나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마치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사연있어 보이는 포스를 풍기는 나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실 때
주위 사람들이 신경쓰여서ㅡ 드라마 주인공처럼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없는거처럼
어디로, 그리고 언제 떠나든. 그런 멋진 '장면'과 같은 현실은 없다.
밥먹고. 졸음이 쏟아지고, 똥이 마려운 현실은 등에 착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내 일상을 지배한다. 뭐, 또 그런게 사는 재미이기도 하고.
로망을 품은 그 시간은 길고도 길지만. 실제로 길로 나선지는 얼마 안된,
직장인, 가족,친구, 게으름뱅이, 책구매자 로서의 정체성에 '여행자'로서의 정체성도 추가하고 싶어 안달난 홍냥은 자꾸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있다.
오늘 도서관에 앉아. 런던 지도를 펴놓고,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을 가지 전에 읽어야할 역사책과 소설책을 목록을 적어보고, 이미 공부해야 할 그림들에 대해 살펴보고.
또 여행지의 감동을 배로 만들어줄 영화리스트를 작성했다.
즐거운 시간이었으나... 고작 일주일 정도에 불과할 여름휴가를 위해
몇 달간의 준비작업을 시작하는 나를 보면서.
혹. 나는 시간이 남아돌아 이러고 있는건 아닌가. 라는 자기검열로부터 시작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다소 생뚱맞은 철학적 질문(?)까지 잡념은 끝간데 모르고 펼쳐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도서관 구석에 앉아. 깜박이는 커서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몇 줄 쓰지 못하고 컴퓨터를 끄고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다시 읽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들을 잘 따라오다가 취직을 하고.
그 다음 규칙인 결혼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규칙이 아닌 다른 행동들은 혹시 철없는 짓이 아닐까 라는 불안한 마음에
애써. 먼가 일반화시켜서 이해하려 드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물론 여기에는. 얼마전에.....저축 안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다가 막상 결혼할 때
돈 없어서 고생하게 되면 후회하게 되지 않겠어? 라는 어떤 이의 충고(?) 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난..늘 그렇듯....대신...명품백 안사잖아....라고 대답했지만.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생활 이외에는 월급의 80%를 저축하는 그런 짠순이 생활로 사는게
더 나은 삶은 아닌가. 라는 고민을 잠깐 했었다.......)
물론, 내가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내 스스로 내 삶의 질은 얼만큼 유지할 수 있으며
나는 또 어느정도의 인간다운 삶과 가치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결국엔 벌이의 문제이고,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끝없이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해야하는 문제다.
하지만. 그 불안을 제외하고는. 나는 재미있는 걸 하나씩 해보면서 살겠다고 결론을 이미 내리지 않았던가.
나는 회사에서 새로 배우는 것도 재밌고, 단골 맥주집에서 친구들과의 수다도 즐겁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재미있다. 1년전쯤 처음 배웠던 드럼연습곡도 이번 주말에 오랫만에 다시 연습할 때는 내가 왜 그렇게 어려워했던가. 라는 의문을 품으며 연습을 했고.
좋은 음악을 듣고, 한없이 산책을 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고난 창의력과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조금씩 내가 성장하고 넓어지는 걸 경험하는게
가장 즐겁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가 굳이 그 질문에 답해야할 필요가 없다. 모범답안처럼 누가 제시해준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내 인생을 감사해하며 즐겁게 살면 된다...
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홍냥.
몇달 전의 감을 다시 찾아. 즐거운 일상을 다시 한걸음 내딪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