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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노래] 김윤아

자우림을 처음 접한 건 Jaurim `True` Live-R  앨범에서 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별다른 문화생활을 하지 않고, 그저 공부만(?) 했던 착실한 학생 홍냥.
주로 영화음악을 들었더랬다. 배유정의 영화음악, 홍은철의 영화음악과 함께..

그러다가. 대학 입학 후, 과외재벌로 거듭나면서 자유롭게 CD 를 살 수 있게 되고.
우연히 고르게 된 자우림의 라이브 앨범.
대충 노래 몇 곡 알고 있던 밴드였다가 그들의 라이브를 듣고 홀!딱 빠졌었더랬다.
특히, '소중한 그래 사랑해요..이별은 슬픈거죠..'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직설적 화법이 아닌
조금은 세련된 듯한 그들의 가사는, 음악을 듣고 있는 나도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2001년. 내가 좋아하게 된 이 밴드의 보컬 김윤아가 '솔로'앨범을 냈단 소식을 듣고
냉큼 앨범을 샀다. 그리고 아마도 그 다음 해까지 거의 매일 이 앨범을 들어대곤 했다.



가장 열광했던 노래는 '담'


상처받은 날짐승 같은 마음으로.
누구도 만나더라도 날카로운 칼날로 상처를 줄 수밖에 없던 그런 때.
그런 나를 감싸주겠노라고 했던 어떤 이를 아프게했던..기억.
뒤늦게 그 따뜻함에 조금 달라지고 싶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던 그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허전함과 아쉬움을 달랬던 것 같다.

김윤아의 첫번째 솔로 앨범은
거품같았던 나의 20대 자의식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던 든든한 응원군 같았다.
보람고시원의 수많은 밤들을 채워주던 그녀의 목소리.

이 앨범을 냈을 때 김윤아의 나이는 28살이었다.
몇번의 사랑을 했을 거고. 변하지 않는 소통을 갈망했으나. 그런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렸을 것이다. 이 모든것이 남들과 다른 날카로운 자의식 때문일거라는 자책도 했을거고.
때문에 더더욱 남들과 다르게. 혹은 남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동류의식.



유리가면
1집 이후로 3년만에 발매된 그녀의 두번째 솔로앨범.
소름끼치는 노랫말들.
1집과는 달리 (사실 1집의 에세이집을 잃어버려서 온전히 1집을 추억할 수는 없지만.)
화려한 표지, 잔뜩 멋내고 꾸민 사진들.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무대위의 복장같은 옷들.
이미 앨범 자켓 사진에서부터 그녀는 하고 싶은 말들을 시작한다.
슬프다고. 아프다고.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않는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적당한 위악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익혔다.

그렇다.  서른 한살의 그녀는 더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물론. 단조의 멜로디와   마음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가사들은 어둡고 우울하다.
그러나 1집에서의 불안함보단 약간의 자조와 체념을 품은 2집의 가사들은
훨씬 단단하고 농밀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올곧다.
노랫말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내 귀에 닿아 마음을 움직인다.

2004년 한창 신림동에서 공부하고 있던 시절.
내가 김윤아의 음악을 듣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녀의 두번째 솔로 앨범을 공감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시험에 붙고 지금쯤 잘나가는 사무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망치듯 시작한 신림생활에서 내가 그녀의 목소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었다.
뭐, 이렇게 말하면 변명같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동정해 슬퍼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나는 거리를 걸었지
무너지는 마음을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눈물이 흘러내려 초라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6년 2010년 그녀는 세번째 솔로앨범을 냈다.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를 마지막으로 '심리적 이중생활' 을 끝내고
이제는 어느정도 통합된 자아와 함께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홍냥.
길고 긴 방황의 시즌 2를 끝내고 간신히 시즌 3을 시작하고.
진짜와 가짜를 조금은 구별하고. 내가 들고 있던게 가짜인게 아니라
그냥 이런 모양의 삶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깜냥이라고 인정하게 된 즈음. 
삶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고  관계맺음의 어려움이 더이상 어려움이 아닌게 되고.




원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정규 1집 <유실물보관소> 딱 한장만 사려고
[알라딘] 에 들었갔다가 그녀의 세번째 솔로 앨범 발매를 알게되었다.  <315360>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기를 여러번.
뜨가운 감자의 <시소>  민트 페이퍼 프로젝트 앨범 vol.3 <Life>
BOOK OST <천일의 몽상> 에피톤 프로젝트의 <유실물 보관소> 사이에 숨겨서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세속의 기준에 꽤 괜찮은 < 치과의사 > 랑 결혼을 하고
케이블에서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방송에 나오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그녀를 보면서  어쩐지 나는 조금 실망을 했었다.
내가 알던 그녀는. 아니 내가 듣던 음악 속의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을 낳고. 그렇게 사는 거 말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의식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유유하게 세상을 비웃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의 그녀는 영악한 여우 같았다.  훗.
(하긴. 예전에 잠깐 음악 프로그램 진행했을 때 그녀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왜 나는 그녀가 여성스럽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을까?
누구보다 자신의 여성성을 잘 표현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녀가 1,2집의 감수성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고.
설 내가 지금도 2집의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변한  그녀가 그런 감수성을 노래한다면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악이 이제 남을 속이기 위한 가면이 되었다고 욕을 했을지도.

그렇다고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한다면.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그래서 나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라고 노래하는 3집이라면
나는 또다른 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들을 것인가. 말것인가. 
듣는 다면 나는 늘 그렇듯 위로를 받을 것인가. 그저 철지난 추억같은 기분이 들것인가.

조심스레 앨범의 비닐을 뜯고 속의 사진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나는 몇번이나 이 앨범을 돌려 듣고 있다.

종이 띠처럼 만들어진 앨범은 몇 장의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밖의 사진은 꾸미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편안해보인다.
안쪽의 사진은 어딘가를 찾아가는 그녀의 뒷모습.
잠시 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이 담겨 있다.
일상의 편안함을 찾았으나 자신을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듯한.


[이상한 나라의 릴리스]

이상한 세상에서 내 손을 잡아 주는 건 이상하게 어두운 친구들.
외로움과 허무, 끝없는 의문과 불안. 우울한 내 친구들의 이름.

아무말 없이 그저 함께 걸어갈 뿐.
그래도 혼자는 아니니까.

 - 어떤 사람이 나한테 그랬었다.
    행복은 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너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찾아오는 
    찰라의 감정이라고.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힘들어 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지속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건 행복은 아닌거라고.
    그런것에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거라고.

    삶은 언제든지 나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내 삶을 내던질 수 없다.
    그럴 권한같은 건 내가 없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
    대신. 나는. 쉽게 절망하지 않을만큼의 용기는 있다.
    이만큼은 내가 나를 믿어도 되는 부분. 



[going home]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한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해본다.

- 내가 바라는 사랑은. 이런 마음이다.
   내가 있어서, 살만하다고.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그렇게 말해 줄 사람이 있다면 삶은.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얼음 공주]

어떤 사람도
어떤 설렘도
웅크린 나를 깨우지 못할 거예요
사랑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이대로 있을래요. 나 혼자서.

차가운 얼음 속에서  나를 숨겨 둘레요.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을 거에요.
사랑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이대로 있을래요. 나 혼자서.

 - 아마도 이 노래는 그녀의 예전 일기장 어느 구절에서 발췌한 이야기 일지도 
    아니면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이해받지 못함에 속상해서 끄적인 메모장일지도.
    훗. 몇 년전의 내 일기 같은 노랫말이 반갑다.

그 밖에 아들에게 불러주는 <에뜨왈르>
도둑고양이들을 위한 <cat song>
심리학 책 2,3 권은 읽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중인 20대 여성들을 위한 <착한 소녀>
..

한 곡도 버릴 곡이 없다.
37의 김윤아는. 이제 완연히 만개하는 중이다.
위악을 떨지 않고, 자신을 보여주는 법을 알게 되었고.
삶이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걸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살만한 거 같다고 슬며시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 미칠듯이, 버릴 것 하나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지나온 그녀의 삶이 그녀를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으니까.

홍냥은 그녀의 세번째 솔로 앨범에서, 2집처럼 격렬한 공감과 떨림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니라는 도움말을 읽는 것 같은
고마움을 느낀다.


여기까지.
서른 한 해 살아온 홍냥이. 한 걸음 먼저 살고 있는 그녀의 삶에
감사하고. 위로받고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