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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일상다반사

[일상] 32


오늘은 팀장님과 대리급 회식하는 날. 이제 직장생활 5년차의 홍은
회식자리 참석의 기준을 그날의 기분이 아니라 꼭 가야할 자리와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그런 자리로 구분하는 것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다.
오늘은 꼭 가야할거  같은 자리. 물론 좀 가고 싶기도 했고.

그러나 결국 예상했던 일이 터져 일을 하고 결국 이제야 끝났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것인지라 누구를 향해서 인지도 모를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그나마 밥도 못먹고 뾰로통해져 있는 나를 달랜다고 여기까지 와서 기어코
밥을 먹이고 가는 남친님 덕분에 마음이 좀 풀어졌다.

겨울 밤의 사무실은 춥다.
야근 아니면 회식을 이어서 하는 12월의 일정은 빡빡하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과연 누군가에게 얼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일일까?
나는 내 삶을 왜 이 일을 하는데 쓰고 있을까?
단지 월급만을 위한 것일까?  어떤 사람이 그랬었다, 그렇담 너무 슬프잖아. 라고.
나는. 대신 그 돈으로 뭔가를 할 수 있잖아. 라고 대답을 했지만.
좀 바쁜 나는 그닥 별다른 걸 하고 있지도 않다.
하긴 방 청소하겠다고 다 뒤집어서 어지럽혀 놓고 3일째 손도 못대고 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없고 피곤하기도 하다.

주말에 오랫만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봤다. " 잘알지도 못하면서 "
어렸을 땐 그랬다. 잘 알지 못하니깐 열심히 설명해야 한다고. 최소한 내가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선 말이다. 그게 설령 나를 조금 우습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확실히 말이 많이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우스워 지기 쉽다. 좀 더 없어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진심이 통한다면 그게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일 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다 같은 마음일꺼라고 생각했다.

헌데 내 진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세상이 원래 그런것인지. 아니면 혹은 그저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위안을 위한 행동에 불과했던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기도 했고.
조용히 나를 정립하는 시간도 그다지 갖지 못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내 문제만은 아니다. 어쩌면 가난.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결핍이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결핍.

남들을 위한 삶 같은 건 애초에 살 생각도 없고, 그렇게 살지도 못할거면서
마이너의 삶에 대해 거의 동경에 가까운 애착과 집착을 가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걸꺼다.

그러니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문제에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화가 나는건 그 비정규직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될 정서적인
결핍이 내 덜자란 자아의 어느 부분을 아프게 건들이기 때문.

내 존재가 타인에게 혹여 폐가 되는건 아닐까 늘 불안해하던 어린아이를 더 이상 키울 힘은 없는거 같다.
그리고 난 이미 사회적 나이로는 다 컸기 때문에 충분히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고 조용히 혼자 살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운좋게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서 연애란 걸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숨겨둔 그 결핍은 도대체 채울 방법 같은 건 없을 거 같다.

결국엔 그 마음까지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 (<- 그것도 꽤 진심으로.) 사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나는 정말 궁금하다. 또 너무 무섭다.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 아이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게 될까봐. 물론. 그것도 미래의 녀석이 타고난 팔자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삶을 획기적으로 뒤흔들 어떤 파괴적 선택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
회사 때려치고 외국으로 날아가기 라든가. 집을 떠나 독립을 한다던가. 아니면 극단적으로 죽는다던가. 뭐 등등 다양한 선택항으로 삼고 있던 것들. 그 무엇을 선택하기에도 나는 너무 피곤하다.

대신.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보는 그런 태도를 선택하기로 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남들에게 책임감 있어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한 행동 말고
남들에게 참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한 어떤 행동 말고. 그냥 순간만은 살고 싶은 대로 살자.
물론 뭐 적당한 한도 내에서.

아. 이야기가 어긋났다.
그러니까 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굳이 남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거나 설명하지 않게 된 건 어느측면에서  내가 내 삶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술자리에서 주책맞게 해대던 어떤 설명들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들이었던거다.  그리고 나서 나는..서른 언저리 즈음엔 난 인생을 다 아는 사람처럼 굴어왔다. 지금까지 그런 경향이 좀 있다. . 저사람이 저런건 아마도 저런 상처가 있기 때문이겠지. 아.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자라면서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게 눈에 보여. 등등 뻔하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대해왔다. 남들과 대화할 때에도.

근데 고현정이 말한다. "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훗. 얼마나 시니컬한 말인가. 
헌데 지금의 나에겐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이제 나 자신에 대해 쪼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남들에 대해서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굴던 나에게  누군가 차갑게 날리는 조크. 랄까?
한동안 불편한 마음에 멀리하던 홍상수 영화가 몇 달 전부터 그렇게 보고 싶어지던건 다 나름 이유가 있었나보다.

그래서 난 이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고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기로 했다. 

굳이 좀 더 하는 척 같은 건 안할 작정이다.

* 오랫만에 중얼거리는 중.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