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막./홍냥방랑기

[여행기]홀로 떠나는 여행-Raos(2) - 9/18


2011년  9월 18일 (일)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기

9월 18일 아침 6시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처음 가는 공항도 아닌데 그래도 혼자 떠난다는 것 때문인지 기분이 달랐다.
바쁜 일정 탓에 서로 한참 못보던 기정이.
나를 배려하여 친히 공항가지 배웅해주었다.

커피 한잔 하고 기정이를 보내고.
정말로 혼자가 되어 씩씩하게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일단은 라운지에 가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뱅기를 타러 갔다. 
베트남 항공은 대한항공과 code share 를 하는 모양이다. 비빔밥도 나오고  마일리지 적립도 된다.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20대 초반에 해보고 싶었던 혼자 비행기 타고 여행가기를 지금 해보고 있다는 걸.

그 때 해보고 싶으면 그냥 해봤으면 될 껄 나는 왜 결국 시도를 못했었을까?
당시에는 이런 저런 합당한 이유들로 핑계를 대며 계획만 세우다 말곤 했었다.
하지만 합당한 이유는 개뿔. 아예 엄두가 안났었다는게 더 진실에 가까웠을게다. 
스무살의 나는 시종일관 당황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아마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불쌍한 청춘은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범생으로을 키워져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스무살들.
수능 백분률이 상위에 있다는 사실로 인생 모든 면에서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불쌍한 영혼들.
차이는. 신나게 무엇이든지 해보는 사람들과  머뭇거리며 하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뉜다는 것.
나의 경우는. 뭔가를 부단히 하는 것 같이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에 속했다.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뭔가를 시도한다고 해서 될거 같지 않았다. 우습지만 그 때의 나는 비행기 라는 걸 탈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그런건 나와 다른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런 사치처럼 느껴졌었다.

가난한 환경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이 나에게 좀 더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금전적 가난이 나를 움직이게 했지만 심리적 빈곤은 나를 주눅들게 했다. 그저 패배한 사람이되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달렸을뿐, 방향도 없었고 바라는 바도 없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꿈조차 꾸지 못할 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차라리 그런 나를 인정했으면 좋았을 껄. 별 거 없는 자존심 내세운다고 괜찮은 척ㅡ 쿨한 척 하며 그렇게 20대 초반을 보냈으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였다 싶다. 훗.

여튼 찌찔했던 나의 20대 초반.
비행기를 타고 혼자 여행을 가보는 것이 내가 생각한 찌질함을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해결책이었다.
그러니깐 내가 전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어떤 경험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니 할 수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가져보기..
위축되어 있는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던 어떤 테스트 랄까? 나는 그런걸 하고 싶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24시간 나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던 뿌리깊은 불신. 산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 을 해소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실행에 옮기지 못해고
ㅡ 신림동으로. 고시원으로 그렇게 도망치는 방식으로 궁극의 찌질함을 완성하며 20대를 낭비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오래 맘고생을 한 이후에야, 길을 한참 돌아와서야 나 자신에게 관대해 질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다른 방식으로 20대의 나를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서른두살의 홍냥에겐 [혼자서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가보기] 같은 미션을 수행할 이유 같은건 없다. 
지금 나는 즐거운 여름휴가를 가는 중이고 그냥즐거우면 되는데
나는 왜 남겨둔 숙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4시간은 훌쩍 지나 갔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
사실 애초에 6시간의 대기 시간은  Priority pass 를 이용해 라운지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떼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작은 하노이 공항엔 business class 만을 위한 라운지 밖에 없었고.  나는
갈곳이 없었다. 낯선 곳에 우두커니 서고 나니. 역시 비행기에서의 잡생각은 또 사라지고 말았다.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고.
홍냥은  너무나도 홍냥스럽게
공항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켰다.

하노이에선 하노이 맥주!
루앙프라방 지도를 펴놓고 눈에 익히고
대강의 일정을 짜고
음악을 듣고
일기를 쓰고...

시간은 금방 갔다. 여행이었으니깐....

이라고 쓰고 싶지만
진심 너무 지겨웠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너무 졸렸고
계속된 야근에 너무 피곤했고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가방은 무거웠고
나는 너무 심심했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시간의 긴 대기 이후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라오항공사 비행기를 탔다.
세상에 그렇게 작은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양쪽에 좌석 2개씩 한라인에 4개. 그러니깐 좌석버스 만한
비행기였다. 원래 좀 안전불감증이 있는터라 그닥 위험하단 생각은 안들었다. 사실..위험을 느끼기엔
이미 나는 너무 피곤했고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는 일 없이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라오스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지방의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의 크기를 가진 공항에서 나왔을 땐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오직 픽업만을 위해 급하게 예약했던 호텔에서는 픽업을 나오지도 않았더랬다. 당황.
결국 택시타고 호텔로 향했다.


루앙프라방 리버롯지 ( http://www.luang-prabang-river-lodge.com/)
Booking.com 에서 일단 예약을 하고 난 다음에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Booking.com 에서는 하루에 50$ 였는데  홈페이지에서는 40$ 여서 한국에서 예약했을때
잠깐 맘 상했던거 말고는 첫 날 지친 나를 받아주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었다.


나는 15시간 만에  서울 동쪽 끝 어느 아파트의 내 방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라오스 북부도시 루앙프라방의 어느 호텔방으로 옮겨왔다. 

상상했던 설레임나 기대감보단 심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과연 홍냥은. 앞으로 6일간의 일정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