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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홍냥방랑기

[여행기]홀로 떠나는 여행-Raos(5) - 9/20


2011년  9월 20일 (화)  
루앙프라방 자전거 산책
방비엥으로 이동하기



소영에 쓴 엽서
또 하루가 밝았다.
숙소 로비에 책과 엽서와 일기장을
들고 나가 앉았다.

해외에서 엽서를 받는게
로망이라는 소영이를 위해
엽서를 쓰고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들었다.

여행의 긴장감은 어느정도 풀린탓에 어제 느꼈던 당황스러움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더 뿌듯하게 지내고 싶다는 욕심은 생긴다.

몇번의 여행을 통해 알게 된건데  나는 여행을 떠나면 가만히 앉아서 쉬지를 못하는 타입이다.
도장찍듯 지나치게 동선을 길게 잡아 마구마루 돌아다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멍때리는 것도 잘 못한다.
조바심인가.?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그 보단 호기심. 이라는게 맞을 거 같다.
아마...일상을 여행에서 처럼 살았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은 짧고 일상은 길어서 지겹단 말이다. (변명?)

시사방봉 도로

여행자들을 위한 중심도로 야시장이 열리고 여행사와 환전소가 즐비하고 푸쉬산 입구가 있는 곳.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일단 짐을 여행사에 맡겨둔 후 자전거를 빌렸다.  루앙프라방 구석구석 눈에 담고 싶어서.

굳이 남들 추천 코스 따를 필요 있냐. 고 생각하면서도
또 남들이 좋다고 하면 한번씩 해보고 싶어하는  종이짝처럼 얇은 자존감의 소유자 홍냥. 
결국엔 여행책에 추천하는 코스는 대충 한번씩은 대충 해본 듯하다.
뭐 투어야 다 해볼 필요도 없고, 그닥 땡기는 것도 없었고....

어제 충동적으로 방비엥 버스표를 이미 사버렸고 나는 몇시간 후면 이도시를 떠나야 한다.
이름이 너무 예뻐서 와보고 싶던 곳. 
그냥 떠나자니 뭔가 자꾸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쯤 머물면서 긴장감이 아닌 심심함을 온몸으로 만끽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겨울이 끝날 무렵 갔던 군산 선유도의 어느 펜션 방에 누워서 노닥노닥 할 때.
아니면 겨울 초입에 찾아들었던 안동의 어느 서원 방에서 꾸벅꾸벅 졸 때.
(그리고 보니 국내여행의 팔할은 지선이랑 함께였구나....흑흑. 보고 싶다. 지선...)
그 시간을 좀 더 유예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느낌.
아무래도 루앙프라방은 비슷한 느낌의 도시다. 내게.

그런 루앙프라방을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 반쯤 달렸다.
자전거 빌리는 곳은 골목 골목 곳곳에 있다.
게스트 하루스에서도. 여행사에서도. 아니면 기념품샵에서도.
하루에 2만낍으로 가격을 맞춘듯 한데  2시간만 타고 올테니 깍아달라고 했다.
내가 갔던 여행사의 새침한 아가씨는  원래 그런거 없는데 특별히 깍아준다고 하며
오천낍을 깍아준다.

메콩강과 칸강을 양 옆으로 반도와 같은 형태를 지닌 작은 도시 루앙프라방은
자전거로 구석 구석 돌아도 2시간정도면 족하다.
물론 더 멀리 멀리 외곽으로 나간다면야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여행자 거리 중심으로 뱅글 뱅글 돌았다.


아침시장

가지런히 정리된 상점



시장

없는게 없다.



거리


화려한 사원


차도에 차가 많은 것도 아니고
워낙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서 자전거 타고 동네를 구경하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동남아. 고로 매우 더운 곳.
11시가 넘어가자 더 이상 자전거를 타는 건 무리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를 부리기로 결정!


맛있는 쌀국수


시사방봉 도로에 관광청 맞은편에 과일주스 노점상들을 지나 푸쉬산 입구 가기전에 있는
국수 집이다.  자전거 타고 오가며 보다가 점심 먹기로 결정한 곳!

국수 한그릇에 만낍. 뭐 이것 저것 넣겠냐고 하길래 오케이 오케이 를 외치고
받아든 쌀국수는 맛있었다.  서울에서 베트남 쌀국수에 맛이 어느정도 익숙해서였을거다.

라오스는 그다지 전통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음식, 문화, 경제 전반적으로 베트남과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란다.
하긴 국가라고 할만한  독립왕조가 생긴게 17세기 란쌍왕조라고 하니...
조선왕조 500년이 시작되고도 좀 지나 당파싸움질 한참 해대고 있을때다.  

대부분의 공산품은 태국에서 공수해오는 편이고,
음식도 우리가 베트남음식이나 태국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라오스 방송국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어렸을때부터 태국방송을 보고 자라난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어를 거의 라오스 어처럼 유창하게 사용한다.
게다가 라오스는 여행자들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아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개다가 식당도 여행자들의 취향에 맞춰 웨스턴 스탈이 아주 많다~~~

아! 그리고 바로 저 곳에서 한국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한국에서 홈쇼핑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서른 한살의 씩씩한 그녀는 루앙프라방이 두번째라고 했다.
작년에 루앙프라방과 방비엥을 다녀왔고, 루앙프라방에 흠뻑 빠져
올해는 휴가 내내 루앙프라방에만 있다가 오늘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아마도 루앙프라방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나  은근한 매력을 가진 도시임이 분명하다.
오랫만에 방언 터진듯 수다를 떨고 바이 바이.
반가움에 명함도 주고 했으나. 장문의 문자를 보낸 그녀의 안부를 한국돌아와 확인하는 바람에
답장도못하고 그렇게 인연은 끝났다.  하지만 한국말을 마구 마구 해달때의 반가움이란..훗.

사거리 과일 주스노점상


점심을 먹고 더위를 가시기 위해 생과일 주스 한잔 먹고 게으름 피우다가
버스를 타러 여행사로 향했다.

터미널까지 직접 가서 표를 사는 방법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여행사에서 표를  사는 게 더 나은거 같다.
여행사에서 버스표를 사면  원하는 장소까지 픽업이 나와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것까지 픽업 아저씨가 알아서 해준다.

물론 비용차이는 좀 있겠지만 라오스 물가가 좀 저렴한데다
터미널까지 툭툭 가격을 협상하고 어쩌고 하는 거 생각해보면 걍 same same..

이것이 바로 미니밴.


터미널에 도착해서 사진에 보이는 미니밴을 타고 방비엥으로 출발.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한 사람은
서양여자분 2 (국적모름. 한마디도 안해봄),  미국인 남녀  커플,  60대 말레이시아 아저씨 3명 
.... 나.....(크헉....)

방비엥까지는 공식적으로 6시간이 걸린다고 여행책에 나와있다.
하지만 여행오기전 동배(동남아 배낭여행 네이버 카페) 를 보니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까지 도로가 유실되어서 버스가 다니기 어렵다고 했다.
ㅡ 간혹 미니밴이 이동하기도 하나 이동시간은 대략 10시간이 넘어간다고 하니...사실 걱정이 앞섰다.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물 세통/ 조마 베이커리에서 빵 한개/ 껌 1통/ 과자 한봉지 등
일용할 양식을 준비해 버스를 탔다. 

그러나....두둥...
말레이시아 아저씨들이 바로 3일전에 비얀티얀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10시간 걸릴 거리가 24시간이 걸렸다는게 아닌가!!!!!!!!!!!!!

아. 나의 소중한 휴가를 버스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방비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어제 갑자기 방비엥 버스표를 산건가?
지금 루앙프라방에 있었다면 루앙프라방 베이커리에 가서 맛있는 빵이나 먹고
소설책이나 읽으면서 띵까띵까 휴식을 취하고 있을텐데?...
10시간걸리면 새벽에 방비엥에 도착한다고?  나는 방비엥에 방도 안잡았다고!!!!!!

라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내가 미쳤지...라며 자학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려고 하는데....

자꾸 말레이시아 아저씨 들이 말시킨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 3분은 서로 친구 사이란다.
나를 몇살로 본건지...혼자 여기 온다고 하는데 아빠한테 안혼났냐고 계속 물어본다.
뭔가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지만 나의 짧고 짧은 영어 실력으론 도대체
'대화' 라는 걸 할 수 없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들이 자꾸 말걸어 준다.
물론 그분들도 셋이 놀면 심심하니깐 그랬겠지만 그래도 거미줄 칠 뻔한 나의 입이 다시 달싹달싹
움직이면서  언제 자학의 길로 성큼 들어셨냐는 듯이...아저씨들과 수다를 떨며 버스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그분들은  속터져 죽을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나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V

그러나 출발하고 한시간쯤 갔을까???
길이 참 험하다 싶었는데 타이어가 빵꾸났단다.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과자나 커피  그리고 간단한 음식을 판다.

그 휴게소에는 삼남매가 있었다.
동생을 엎은 큰누나와  심술보 가득한 둘째딸 그리고 엄마.
언니는 동생을 엎고 화장실 앞에 서서 이용료를 받는다.

동생은 계속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주위를 돌며 먹을 것을 쳐다보길래
아예 과자를 사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들을 만난다. 버스로 쌩~~하니 이동하는 거라 자세히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위스키 마을에서 구경하던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자급자족을 할 수 밖에 없는 인프라 상태.

그냥. 그곳은 발전되지 않고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기적일까?
그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매끈한 도시로 바꾸고 싶을까?
그들의 삶의 공간이 발전한다고 해서 과연 그 과실이 원주민들에게 돌아갈까?

우리나라 발전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힘입어 소수 산업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재벌이 되고
수많은 농민들은 노동자가로 내몰리고 게다가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고)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기점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듯 보였지만.
지금의 현실도 뭐 크게 달라진 건 없는거 같다.

재벌이 된 창업주들의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 그 자체를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개인의 탐욕만으로  빈부격차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은 존경할만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애초에 재벌이 특혜로 성장했고  그 과실마저 노동자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지 않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결국 사회의 룰이 공정하지 않았는게 않았다는게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사회의 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용산참사였다고 
생각한다. 도시 재개발이 문제인게 아니고 그 공간을 구성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간 밖으로 내몰리면서  소수 외부인들에 주머니로  공간에서 창출되는 개발 이익이 돌아가는 사회의 룰.....)   

때문에 소위 기존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라오스가 발전하게 되었을 때 
궁극적으로 과연 개개인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뭐...절대적인 삶의 질이 나아졌으니 그래도 그게 어디냐..
(보릿고개는 이제 겪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게 어디냐. 라는 논리?)  라는 논리로 반박하면
또 그다지 할말은 없다. 그들 개개인이 처한 환경은 어떤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열악한건 사실이니깐.
 
이상적인 꿈이겠지만.
나는 라오스가 발전을 한다면.
우리나라 같은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외부인이 들어가서 전부 싹 쓸어담고 없애버리고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도시들이 모형처럼 들어서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소외되어 버리는 그런 방식....말이다.




나에게 라오 커피도 사주시고  말레이시아 돈도 보여주며 선물로 주시고 여행다녔던 사진. 가족들 사진까지 보여주시며 나의 입에 거미줄을 제거해주셨던 맘씨좋은 아저씨들과 실컷 놀고 나니
드디어 타이어 수리가 끝났단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고고씽.
2시 30분쯤 출발한 버스는 밤 9시가 좀 안되서 어두운 방비엥 터미널에 날 떨궈주었다.
어둡고. 길모르고. 숙소 없는 나를..........자다 깨서 패닉이 되어버린 나를..

말레이시아 아저씨들이 물어본다...숙소 정했냐고....
나는....불쌍한 표정으로...." I don't have a room.  where are U......with me.....!"  라고 말하여
그들을 쫄래 쫄래 쫓아갔다.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이얘기를 하면 위험한거 아니냐고 많이 물어본다.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근데 환갑이 지나서도 친구들끼리 배낭여행을 다니며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묶는 아저씨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게다가 배고픈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고 방 잡고 다시 만나 밥도 함께 먹어주었다.  주륵주륵. 
아마 그들이 나를 버렸으면 나는 화려한 밤의 방비엥에 기가 죽어
방에서 감자칩과 라오맥주나 마시며 우울하게 잠들 수 밖에 없었을텐데...
그들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그러나 그들이 구한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구겨놓기에 적당했다.
6만낍 (8달러도 안되는 돈. 그니깐 만원도 안되는 돈) 으로 에어콘도 나오고 온수도 나오는
착한 곳이었지만. 복도에서 본 몇마리의 벌레 때문에 나는 긴팔 긴바지 입고 차렷자세로 
곱게 잠들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에 당장.....숙소부터 다시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