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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대학동기를 만났다.
임신5개월째에 접어든 그녀.
비슷한 질풍노도를 거쳐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든?
혹은 그랬어 하는 삼십대 초반의 우리.
하지만 여전히 어설프고 초라하다.
반짝 반짝 빛나던 시기에 젊음을 던져본적 없으니
그럴 수 밖에...라고 읊조려 보지만
별다른 위로는 되지 않는다.
존재적 결핍을 채울 방법 같은건 애초에 알지 못하는 우리는
그저 서로 기대어 시간을 견뎌왔다는 것에
서로 위안을 하며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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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보내고 평가를 했다.
일상의 어설픔이 극도로 증명되었던 올 한해.
대단한 찬사나 칭찬을 바랬던 적도 없이
그저 욕먹기 싫은 기분에
온 힘을 쏟아부어 몇 달을 보냈다.
근데. 인정받고 싶었나보다.
참. 잘한다고.
'직장생활이 다 그런거지' 라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조금은 서운한 면담을 하고 나니
맥이 풀린다.
단순히 직장생활의 꽃이라는 쇼잉 의 문제라기 보단...
진심으로 나는 그닥 능력있는 사람은 아니었지. 싶다.
원했던 적도 없지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인 건
신나지 않는다.
그저 착한아이 컴플렉스의 일환쯤. 이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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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결혼 얘길 하다 접었다.
남자친구의 현실적인 준비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서른셋에 시집가겠다는 딸에게 너무 이르다. 라고 말을 하는 부모님이랑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두 세달 정도.
결혼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지금까지 혹시 나는 꿈에서 살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 내내 나를 둘러싼 것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대충 고착화시켜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안심하며 ( 테두리 안이 행복하다거나 좋다는 건 아니다. 그저 예측가능한 것일 뿐) 지내왔는데
결혼이란 건 생각했던거 보다 훨씬 예측불가능한 일들 투성이인것 같다.
이제라도 난.
예측불가능한 현실의 흐름을 탈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
어쩌면. 예측 할 수 없다 뿐이지
생각보다 평온할 수도 있다. 는 기대를 조금 해본다.
기정이와 함께라면.
오로지 믿을 것이 애인의 마음 뿐. 이라는게 무서우면서도.
이미 결혼이란걸 하기로 한다면
믿고 안 믿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하겠다. = 너를 믿겠다.
여하튼.
모든 상황 때문이 아니라도.
오로지 나 자신 때문이라도.
잠깐은 심호흡. 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기분은.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살짝 담그고
'앗! 차가워!' 라고 움찔한 상태?
내가 이만큼 속마음을 들어내도.
똑같은 표정으로 내 뒤에 서있는 녀석이 고맙다.
근데 니 표정은 그거 하나인거니?
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