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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일상다반사

[일상] 뒤늦게 외모?




안전하고 깨끗한 내 컴퓨터.
프로그램 추가/제거에서  불필요한 프로그램들 삭제하고. 백신점검했더니 컴퓨터가 깨끗해졌다. 내 마음처럼(?) 후훗,

지금은 새벽2시.
사실 깨어있으면 안되는 수요일 밤. 아니 목요일이 오는 새벽. 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주증의 어느밤.

오늘 티몬에서 구매한 피부관리실 티켓으로 피부마사지를 받고
이마트에 생필품을 샀다.  양말 6켤레와 팬티 10개. 머리띠. 방향제. 기모타이즈. etc.
팬티를 10개나 살 생각은 없었는데, 자연주의에서 10개 묶음에 19,900밖에 안하길래 사버렸다.
나는 상술에 약한 소비자. 훗.

2년전 이맘 때쯤. 나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어찌할 바 모를 순간앞에서 절망적이었고 속수무책이었다.
안그려고 했지만. 역시나 망가지는 관계 앞에 여지없이 일상이 무너졌다. 아니 그럴 뻔 했다.
나는. 가까스로 일상을 지켰다. 대신 문자를 잃었다. 
그러니깐 나는 나의 거의 대부분을 지키는 대신, 내 안의 일부를 은폐시켰다.
나를 설명할 수 없었고, 나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두어도 시간은 흘렀고, 다행히도 일상은 바빴고, 마음의 평온은 유지되었다.
책도 읽지 않고, 일기도 쓰지 않는 홍냥....

- 행복한 삶이란 삶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삶이다. ...참고로 행복한 사람은 삶을 의식하지 않는다.
즉, 당신이 행복을 의식하는 순간ㅡ,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지 않다. 의식은 언제나 병과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며,
행복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구를 빌리자면, "의식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네." 좀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행복은 의식의 대상으로서 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기대되거나 회고될 뿐이다.  -  로쟈의 인문학 서재 p.40

그리하여, 일상을 기록하지 않고, 책을 읽지 않고, 애써 무언가를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관계에 집중했고, 일을 했고. 무엇인가를 먹었다.
덕분에 (팀 분위기 자체가 개떡인 거랑은 별개로)  제법 일을 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평가도 그럭저럭 잘 받았다. 
기정이와의 관계도 안정적이 되었고,  정처없이 헤매이는 내 마음 속 어린아이에 대해 얼마쯤은 아예 잊어버렸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얼마쯤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몸에 살이 좀 붙고, 이제 다른 사람 뒷담화 쯤은 먼저 시작하기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추.

하지만 이대로. 가 전부인가. 라는 생각에 조금은 불안했다.
나는 책을 읽고 싶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감히(?) 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그저 가난이 무섭고, 남들의 조롱거리나 걱정거리가 되는게 싫을 뿐...

누군가에게 부러움이 대상이 되거나, 혹은 이름을 알리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생명을 만진다는 의사가 되는 것도 무서웠고,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법조인이 되는 것도 싫었다.
남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이 되고싶지도 않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어떤 분야에 내 의견을 가지는, 가져야만 하는 학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은.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나온ㅡ 지금의 나의 사회적 위치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좀 더 그럴듯한 일을 하는- 기자라든지. 유학이라든지. 혹은 시험합격이라든지, 뭐 등등-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초라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고...남몰래 자책도 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나는 진심으로  나따위가 '감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고대라는 학벌은. 그냥 부끄럽기 싫었던 마음이 가져온 부차적인 결과일 뿐.
나는 처음부터  내 안의 에너지로 부터 만들어낸 목표라는게 없었다.
고시라는 선택도,. 부끄럽지 않는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지. 굳이 고위 공무원이 되어서
국가를 위해 역할을 하고싶다던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하는 그런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의 제대라는 상황을 이용해 도망쳤을 뿐. 아쉬움은 없다.
쓰는 김에 조금 솔직하게 쓰자면, 가끔 붙은 사람들을 보면. 약간은 초라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기분때문에 아쉬웠던 적은 있지만 공무원이 아니어서 속상했던 적은 없었던거 같다.

여튼 20대 내내 나는 그런 목표없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렸고,
그 원인을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집안 환경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고.
어느정도 그런 상황들이 지금의 나에 영향을 끼친 바가 있다. 라는 것 까지 이해하고 인정했다.

서른셋의 나는. 전쟁같던 이십대의 그런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서는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유치하고, 한심한 마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는 있다.
물론 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지만.....훗.

.............

월요일부터. 나는 책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내내  여행책을 제외하고,  읽히지 않았던 몇 권의 책과 씨름을 했었는데. 다시 책이 눈에 들어온다.
억지로 장수만 넘기던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다시 읽고 있는데,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른 많은 책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허무하게 두번 째 읽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ㅋㅋ )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책을 아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건 그런 거다.  책을 읽는 사람이 가지는 품위. 같은 걸 가지고 싶은 거다.
내가 내 자신에게 욕망하는 건. 이거다.

에이. 그게 뭐야...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그렇다는데....

................

그리고 2012년 목표가 생겼다.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이 되자.
옷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교생 실습 나온, 나보다 고작 열 두세살 정도 더 많았던 대학생의 눈에 띄고 싶어서 아침 내내 옷을 고르던 기억...
당시 쌍방울에 다니던 아빠가 회사에서 기획 상품으로 받아오셨던 까만 티에 하얀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던 날.
나는 그 교생 선생님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고, 그 옷차림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 그 때. 처음으로 옷차림에 대한 컴플렉스가 생겼었던거 같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옷을 사러 갔던 기억은 딱 2번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입을 분홍 원피스와 피아노 콩쿨대회에 나갈 때 입을  꽃무늬 윈피스....
뭐 그거밖에 없긴 하겠냐만은. 아마도 그것만 또렸이 기억나는 걸 보면 엄마가 나에게 옷을 고를 권한을 주었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대부분은 언니들의 옷을 물려입거나. 혹은  빨기 좋은 옷이나 활용도 높은 옷들 위주로 아마 입었을 것이다.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옷이 무지하게 많았을 수도 있다.(그럴리가 없잖아? ㅋㅋ)
하지만 컴플렉스란 팩트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어떤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 나를 지배하여. 트라우마로 자리를 잡는다면. 그건 그대로 나의 컴플렉스가 되는 것이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래서 트라우마의 극복이 어려운 것일테고.

여튼 어린시절부터 내 기억 속의 나는, 쭉...예쁜 옷에 대한 욕구는 없는 사람인 것 처럼 굴었다.
고등학교 때. 코트를 사고 싶었지만.  아빠가 회사를 막 관둔터라. 예쁘지 않은 싸구려 잠바에 만족해야 했고.
학원 친구들이 다 입었던, 자켓이 가지고 싶었지만. 언니가 활용도가 좋지 않다고 사주지 않았던 기억 들도 내 컴플렉스 강화에
기여를 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옷에 대한 내 컴플렉스는 내가 진짜로 어떤 옷을 입고 다녔느냐와는 상관이 없다.
어떤 순간들이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정의를 내리게 만들었고,.
그 때의 기억과 기분들이 지금까지의 내 판단에 준거기준이 되고 있다는게 중요한 것이다.

여하튼. 옷에 더하여. 가방. 장신구. 신발. 피부. 등등.
대충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보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구색을 맞추며 구매하고 소비하며 살고 있지만
정작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사실 美 에 대해 좀 무지하기도 하고,

근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외모에 관심이 없는 척ㅡ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어차피 난 관심 없으니깐. 비싼 옷을 사 입는 건 나답지 않은 짓이고 ( 술 값은 그렇게 내면서!!!)
어차피 난 잘 모르니깐 밤에 좀 세수 안하고 자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난 중성적인깐 살이 좀 쪄도 된다고 나를 방치했다.  그렇다, 이건 방치다. 

대부분 사춘기의  10대 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관심을 아무 많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愛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나는 보여지는 외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나의 자괴감과 컴플렉스와 집안 분위기 등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서  
내 인생의 많은 것들에 대해 선택권이 없다는 판단을 무의식적으로 했던거 같고.
그걸 외모에 관심없다. 라는 쪽으로 포장을 했고.
나는 그런 사람이다. 라는 판단아래. 나 자신을 방치할 명분을 세웠던 거 같다.

방치...
글을 쓰다보니깐. 새로운 단어를 만났다.  (역시 이게 바로 치유하는 글쓰기? ㅋ)

내가 내 자신을 대하는태도. 방치.
출근을 해야 함에도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나.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에선 씻는 것도 적당히 건너뛰는 나.
방이 지저분해져도 옷 따위는 걸지 않고 그냥 허물벗듯 벗어 놓는 나.
살이 찌는 걸 뻔히 알면서도, 회식 자리에서 끊이 없이 먹어대는 나.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 넣는 나.

나는  외모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라,  선택항이 몇 개 없는 내 인생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든 핑계였던거 같다.
외모에 관심없는 사람이에요. 라는 나 자산의 판단을 핑꼐로 나 자신을 방치하는 사람이다. 아니 그랬다.  아니 그렇다.
(지금 이시간까지 안자고 있는 꼴좀 보라니.  하지만 오랫만에 터진 방언같은 이 생각들을 여기서 끝내면 안된다.  소중한 기회라구!)

나는 33년 내내  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줄 알았는데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있는 일은 하지 않고,....제 3자가 되어...열심히 비난하고, 혼내고. 비웃고. 아주아주 열심히....그랬다.
(이것도 그러는 건가?  아니다. 이건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거다. 비난이 아니라. )

여하튼 그래서. 나는 2012년 한 해.
나의 외모에 관심을 쏟아봐야겠다.
잠도 일찍 자고..피부도 관리하구...먹는 것도 조절하고.,,옷차림,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 이런 것도 좀 생각해보고...
내 내면의 마음은 많이 다스렸으니. 이제 외면의 모습도 좀 사랑해주어야 하지 않겠어? ㅋㅋㅋ

아! 이로서 홍냥의 나르시시즘이 완성되는 것인가! ㅋㅋ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 1년 딜레이 된게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지 싶다. ㅋ
난 내 인생의 키워드를 한 개 더 찾아냈고.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고, 내가 원하는 진짜에 한걸음 다가갔다.

나는. 사회적으로 무엇인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뭐 절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인생에 그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다. 나쁜 짓안하고, 남에게 폐 안끼치고, 내 밥벌이 하고 살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플러스. 적절한 분노와  정당한 양심은 기본 베이스? ㅎ

나의 꿈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나이 서른 셋.
이제야 겨우. 내가 원하는게 뭔지를 찾았다.

19살 까지가 인생의 1막  : 컴플레스 형성기 ㅋㅋㅋ
20살  휴지기 :  갑자기 생각났는데. 수능 보기 2달전쯤부터 수능보는 날까지. 드물게 진짜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30살 까지가  인생의 2막 : 컴플레스 확인 및 인정기 ㅋㅋㅋ
31살~32살 휴지기 :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부터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때까지.. 
                             내적 갈등이 없어서  평온안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인생이 이게 다인가 싶어 막연히 불안했다.
                             하지만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분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들들 볶지 않았다.
                             수면위로 무언가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마음?....성격급한 홍냥. 역시 컸어....기다릴 줄도 알고..
                             대신 유기정을 괴롭힌듯? ㅋ 딱히 괴롭혔다기 보단 결혼을 무척이나 하고싶었다.
                             결혼하고  새로운역할을 부여받고, 역할 놀이에 충실하닥 보면 계속 그렇게 살아지지 않을까해서..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가  비단옷을 발견하지 않았었더라면  그냥 살았었을 것처럼 .....
                              그러고 보면 딱히 기다린 것도 아닌 듯 하고.
33살 ~  : 인생의 3막 시작!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고 나면,
지금의 이 구분이 또 어떻게 뒤엉킬지는 모르겠다.  있던 컴플레스들이 다시 막 활개를 칠 수도 있고.
아님 새롭게 성격이 더 꼬일 수도 있고, 이도 저도아니면,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이 또 발생해서. 마음이 지옥처럼 변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게 뭔지 안다.  그러니깐 나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열심히 살면 된다.  발길이 닿는대로. 그렇게.

그럼 2012년 맞이 방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