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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감상일기

[독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 8점
배수아 지음/자음과모음(이룸)

오랫만에 그녀의 소설을 집어들었다. 많이 친절해졌다고 인터뷰까지 했던데 소설 속에 친절함은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림을 묘사하는 듯한 그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였다.
반복되는 그 문장들을 연결하여 하나이 완결된 이야기를 찾아내고 싶었다.
같은 문장을 다시 마주칠 때마다  그녀가 수수께끼를 낸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책을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 그저 한 밤의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엄청 선명한 꿈인 듯한데. 조각조각들이 다 기억이 나서 이어 붙이면 뭔가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쉽게 이음새를 찾을 수 없는 장면들의 반복되는 그런 꿈.

이 소설이 그렇다.

김아야미와 극장장과 여니와 볼핀, 그리고 김철썩 시인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가 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진본' '보편적인 진리' 가 있고 그에 대한 그림자로서의 변주가 아니다.
각각이 그냥 그 자체로 진짜이며 또 진짜가 아니기도 한.
고정된 실체가 없는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장면들이다.

타인을 설득하는 것. 다르게 표현하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인정 받는 것. 그러지 못한 것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극장장이 그나마 유일한 실체 처럼 보였는데 그마저도 마지막 장에서는 희미한 이미지로 묘사되고 흐릿하게 지워진다.

세상에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되어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흔적을 남겨야 하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 그런 진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 같다. 작가는...고독함을 그 자체로 수용하고 이미지로써의 순간의 삶들을 그저 살아갈 뿐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스무살 언저리에 만났던 그녀의 소설들은 내게 신선했다.  건조하고, 관찰하고, 생략하는 듯한 글들을 읽으며 나도 그런 건조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십년이 훌쩍 지나 오랫만에 조우한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것 같다. 물이 가득든 비커에 자신의 색깔을 한방울 똑...하고 떨어뜨리며 뭉쳐진 자의식으로 시작된 처음의 소설들( 그래봤자 일요일의 스끼야끼 식당, 붉은 손 클럽.에세이스트의 책상,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독학자들...정도밖에 안읽어봤고.사실 게다가 이젠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소설들의 내용도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 이 그 흔적을 남기며 퍼지고 퍼져 물 속에 약간의 흔적만 남긴채 용해되어 버린 느낌?

눈을 부릅뜨고,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면서, 반복되는 묘사들 사이를 비집고 알맹이를 찾아 한 줄로 정리하고자 했던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우습게 보이는 소설이다. 

미로 같은 그녀의 소설은. 펼쳐진 페이지 위에서 이미지로 각인하고 
다음장을 넘길 땐.  마치 꿈의 다른 장면을 보는 것 처럼 생각하는게 나을테다.

한여름.

온전한 더위를 느끼며 몽롱한 기분속으로 빠지고 싶은가? 그럼. 폭염이 시작되는 어느 날 낮 2시쯤. 이 소설책을 읽어보자.

더위. 그것 또한 마치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단. 오이와 맥주를 냉장고에 미리 넣어놓을 것!

 

 

 

http://neopaper.tistory.com2013-06-19T14:26:56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