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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일상] 김연수 & 애자

김연수는 분명 문장을 먼저 쓸 것이다.
삶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문장을 쓰고, 그 다음 소재를 찾고 자료를 찾는 식으로
소설을 쓸 것이다.
그의 소설을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사람들의 표정, 대화를 나누는 순간의 소리, 집에 대한 묘사.
어떤 글에서인가 그는 자료수집을 위한 시간을 아끼지않는 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그 이야기 사이 사이에 그는 고민의 문장들을 성기게 끼워넣는다.
발에 채여, 한번쯤 다시 곱씹어 보지 않고는, 혹은 소리내어 읽어보지 않고는.
아니, 공책에 곱게 옮겨써보는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는,  다음 이야기로 책장을 넘길 수 없도록.

아마.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불친절하다고 느꼈던건 이 때문일게다.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다.
뜨거운 고민을 차가운 문장으로 뱉어내는 소설들 사이에서
실로 오랫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불현듯. 나의 변화를 인식한다.

올 초의 나는. 분명 서른 세살에 세계여행을 떠나는 나를 꿈꾸고 있었다.
그저 꿈에 불과할지라도, 아니 공상,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낯선 어느 길에서  담배 한 대와 소설책 한권만 있으면 낄낄거릴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내 삶의 한 풍경으로 삼고 싶었다.
어차피 일상에 대한 미련은 없었고, 다만 나에게 없는 건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월의 나는. 사랑을 꿈꾸고, 연애를 꿈꾸고, 정착을 꿈꾼다.
저녁에 잠들기 전 굿나잇 키스를 나누는 따뜻한 체온을 생각하고.
함께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상상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p.183)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나는 더이상 예전의 온도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연수의 소설이 더 말할 나위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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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가족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족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걸 알게 된 건
'집으로' 를 본 직후였을 것이다.

같이 영화를 봤던 S 오빠는 눈가가 빨개졌고, J 언니는 펑펑 울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왜....울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의 난. '와이키키브라더스' 를 보고 펑펑 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메마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코드의 차이.?

여하튼.
가족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이해하는 결말 때문이다.
갈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모든 것을 이해해..로 맺음하는 결말들이
어쩐지 가족의 신화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현실 속에서 가족이지만, 화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수많은 가족들에게 죄책감과 부담감을 더해주니까.

내가 좋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가족의 탄생과 같은 영화다.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내가 너를 다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너의 존재를 내 삶에서 인정한다.

어제 포스팅에도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애자> 역시 그렇고 그런 가족영화다.
사고의 죄책감으로 아들에게는 무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딸에게는 평범한 삶(소설가 따위 말고 엄마의 동물병원에서 일을 도와주거나 혹은 결혼을 하는)을 요구하는
어떤 엄마와  그런 엄마가 서운하고 답답한 딸.  평행선이고 답이 없다.

그런데 엄마가 암에 걸리고, 딸은 그런 엄마를 간호하면서 소중한 가족애를 느낀다.
그 가족애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게 아니고, 원래 가족이니까.....하는 것이다...

물론 슬픈 영화다. 그리고 이야기를 잘 풀어간 영화고,  두 명의 여배우들의 연기도 더할 나위없는 영화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질질 짰다.  어제는. 그저 감동만 했다.

그러나 역시 조금은 삐딱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아마도. 내가 김연수 소설을 읽는 중이라서 그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