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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책]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1. 요즘의 홍냥.
홍냥은 스물너댓살 무렵부터 마흔 예찬론자였다.
지금이 좀 시시하면 어떠리오. 인생은 마흔부터다. 그 때 반짝반짝 빛나면 되는것이요.
지금은 그때를 위한 동면의 시기일뿐. 내가 지금 초라하다하여 지나가는 그대 나를 비웃지마오.

하지만 서른이 맞이하여, 그 첫해를 이렇게 초초초초라하게 보내고 있는 지금
그 때의 거들먹거림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키우며 칼을 갈고 있었기기에 가능했던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젊었기에, 아니 그보단 어렸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좀 젖비린내나는 치기였던게다.

아마 그 때 나는 서른을 이렇게 상상했을 것이다.
물론 서른 역시 보잘 것 없고, 별다를바없겠지만, 분명히 무언가 모든걸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그 무언가를 찾아 매진하고 있을거라고. 비록 입성은 초라하더라도, 무언가 씩~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매우 안정적인 미소를 날릴 그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물론 수면 아래서 발을 열나게 구루고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2009년 10월 어느 언저리에서의 홍냥은 이도 저도 아닌게다.
5년전에 없었던 그 무엇이 어느순간 '짠'하고 인생에 나타나, '이게 당신의 것이에요' 하고 나타나줄리 만무하다는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허전하고 허무한 마음을
위로해줄 그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서른의 홍냥은 그런 위로가 없다고 해서 잠에 잠을 못든다거나. 슬프다거나 하지 않을만큼 세상을 알아버렸고, 무서운 속도로 적응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말이다.

이제는 적당히 제 몫을 하는 (회사에서 그렇게 생각할랑가는 별게의 문제겠지만.) 1년차 대리가 되어있고,
마치 잃어버린 위로에 대한 대안이라도 되는 양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설레임의 감정은
인생에 한번도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한적 없는 신의 존재에 밀려 무참히도 참패를 당하고 있다.
(아. 적어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신이시여.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나이까... 길 잃은 어린양을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 그대의 따뜻한 마음은 고맙지만, 저 말고도 구할 세상의 많은 양들이 있지 않습니까...ㅠㅠ)

2. 축제를 즐겨라.
그러니까 홍냥이 음악에 입문한 시간은 티끌보다 짧은 시간이다. 물론, 중학교 때 배유정의 영화음악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왔던 시간들도 있었으나, 당대의 서태지에 감동했던 적도 없고, HOT 멤버의 이름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음악에 무심했다. 물론, 친구가 선물로 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OST' 를 듣고 잠시 졸기도 하고, 또다른 친구가 야자 시간에 귀에 꽂아준'건스앤로지스'에 잠시 열광을 하다가 '너바나의 네버마인드'를 들으며 흥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로 들었던건 'NOW' 류의 컴플레이션 음반이었던거 같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한 때 과외재벌이라고 불리우며, 지금 월급에 버금가는 돈을 벌어대기도 했으나. 하룻밤 술값은 아깝지 않게 척척내면서도, 공연하나 보러가는건 손을 벌벌 떨며 익숙해하지 않았으니 (사실 무엇을 소비하느냐는 어떻게 보면 얼마나 그 소비에 익숙하느냐. 의 문제일게다.)  그렇게 음악에 가까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CD 는 간간히 사는 편이었는데. 특히 고시공부한다고 신림동에 쳐박혀 있던 시간들동안 영화 음악을 주로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회사에 입사한 이 후, 대학 시절의 소심함을 떨쳐버리고 서서히 공연의 문화에 발을 들여놓으메, 지금은 어느정도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축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싶어지는 즈음이다. 이제, 스탠딩 공연에서 제법 스스로 어색하지 않고 즐거울만큼 몸을 움직여 리듬을 타고 있는 홍냥을 발견한다.

어제의 GMF 에서 '피터팬컴플렉스'의 공연은 그 절정이었으니....아..나만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노래를 떼창하던 순간의 그 감동은 오랫만에 흥분과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긴, 나만 좋아하면 그들이 4집까지 낼 수는 없었겠지만...ㅋㅋ) U Know I Love you~ 의 떼창....정말 울고 싶을만큼 강렬한 자극의 순간이었다.

그렇다. 인생은 진지해야만하고, 항상 먼 미래를 고민하여 불안해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태도로 삶을 일관해온 부모님 밑에서 자란터라 ( 그들의 삶의 방식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건 아니다..다만..사실이 그렇다는 것뿐...) 나 역시 진지함과 고민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던 때가 있었다. 아니 꽤 길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홍냥의 내부에는 유머를 품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었으니, 타고난 손톱만큼의 기질과. 후천적인 가르침 사이에서 긴방황을 할 수 밖에 없는 팔자였나보다. 여튼. 그렇게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을 뚫고 삼십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일상은 즐거워도 된다는걸, 삶의 목적이 재미일 수도 있다는걸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고, 나아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또아리를 마음 속 깊이 키우게 되었다...아..늦바람이 무섭다는데....

하지만 늦바람은 늦바람일뿐....이미 고착화된 일상은 쉽게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안에 굳어진 습성들은 후천적이니까 내것이 아니야. 라고 부정하기엔 이미 100% 이상 홍냥의 것이 되어버렸으니, 홍냥은 이미 좀 관성화되고, 진지하며, 모범생적인 측면이 거의 대부분인 인간형인게다....

그러니 결국 할 수 있는 건, 일상의 소심한 일탈을 꿈꾸며, 그렇지 꿈만 꾸며, 남들의 일탈을 구경하며 대리 만족할뿐, 별 뾰족한 다른 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로서는. 그리고...사실. 남의 일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우왕왕왕.......~

3.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공연장에서 CD 판매부스에서 홀로 놓여있던 책....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을 본능처럼 집어들었다.
사실 장기하 신드롬 직전에 그들의 음악을 우연히 접하고 흥분했다가. 바로 신드롬에 시들시들해지고.
그보다 좀 전에  브로콜리 너마저를 발견하고 보석처럼 고이 고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홍냥에게
붕가붕가 레코드는 그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GMF 2일차를 가기 전에 읽기 시작해서. 결국 다 읽고 집을 나서게되었다.   

결국 앞서 장문의 글은 이 책이 지금의 홍냥과 같은 사람들에게 매우 염장질에 가까운 책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일탈할 깜냥은 물론 용기도 없으면서, 그래도 근엄과 엄숙 사이를 헤집고, 유머와 재미를 삶의 모토로 삼고자 하는 고리타분한 직장인들이 손에 잡으면, 입에 침고여가며 읽어 제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붕가붕가레코드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그저 재미로 읽어도 좋고, 지금 막 서른이 시작된, 98,99,00학번들에겐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낄낄거리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삶' 을 지키기 위한 고분분투 십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홍냥이 한번도 가졌던 적이 없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던 시간 동안.
버릴 수도 혹은 유지시킬 수도 없던, 당시 과반의 운동권 문화를 이해해보기 위해 운동권의 역사에 관한 책을 찾아 뒤적이던 시간에, 그들은 이렇게도 재미있게 순간을 고민하며, 삶을 채워왔구나 싶은게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렇다.  당신이 그들이 만든 음악에 감동하거나 감동하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말이다. 

홍냥은 그래서. 인생의 전부를 그들처럼 무엇에 걸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재미있는 삶을 위한 어떤 노력들을 멈추지 않는 불쌍한 우리 월급쟁이 직장인들이 이런 음악들을 듣고, 이들을 조력하는 백그라운드가 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물론 의무적으로 그럴필요는 없고, 또한 그럴 수도 없다. 의무적인 맘으로라도 도와줘야 할 곳은 이미 넘 많으니까. 다만. 직장에 취직한 이후로, 마치 근엄한 어른인척 하는 세계에 반드시 편입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하기위해 길을 나선 이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성장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동시에 함께 성장하면서 말이다. 꼭 내가 만들어야만 재밌는건 아니다. 그들이 만들 수 있게 해주고, 난 슬쩍 무임승차해도 상관없단 말이다. ㅋ 즐거울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