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3일 그의 일기.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
나 또한 누구의 것일 수 없듯이.
그러므로 누군가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생기는 감정들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당하지 못하다 해서 감정이 그에 납득하고
사그라드는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식으로라도 삭히고 잊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
나 또한 누구의 것일 수 없듯이.
그러므로 누군가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생기는 감정들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당하지 못하다 해서 감정이 그에 납득하고
사그라드는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식으로라도 삭히고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인터뷰 - 엘르.
가장 보통의 존재 - 이석원
MY UNIQUE WAY OF BEING ALONE
태어나서 처음 내 방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4학년 때쯤이었을까? 고모가 시집을 가고 큰누나가 독립을 하는 바람에 일곱 식구가 된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가 당연히 한 방을 쓰셨고(엄마방),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방’에, 그리고 미술을 하는 둘째누나는 짐이 많았으므로 ‘작은방’ 하나를 통째로 쓰고, 조금 길이가 길었던 ‘가운뎃방’을 막내누나와 내가 반을 갈라 쓰게 됐다. 어느 날 방 한가운데 정 합판으로 벽을 세워 올리고 ‘썬퍼니쳐’ 책상과 ‘보루네오’에서 만든 작은 책장이 놓여진 내 방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이 생각난다. 비록 저 합판 너머로 누나가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을 따라 부르며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생생히 들리던, 청각적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처음 홀로 잠들어야 했을 때의 호기심과 기쁨, 할아버지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됐다는 서운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홀로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반쪽짜리 방에서 시작한 홀로살기 이후 30년. 나는 지금 방 세 개짜리 단독주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사실 나는 원래부터 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로망을 갖거나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혼자 지낼 때만 해도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때문에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봤지만 일과 내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와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성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나는 실내온도에 너무나 민감해 차를 타면 30초 마다 한 번씩 히터나 에어컨을 조절한다. 껐다 켰다가 다시 껐다 켰다가…. 그 짓을 집에서도, 무대에서도 한다. 자연히 함께 있는 사람들이 힘들 수밖엔 없다. 또 나는 공동주택의 생활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소음도, 다른 사람들 귀엔 결코 들리지 않는 것이 내 귀엔 들려오고 그러면 마음의 평화는 깨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서 그 소리가 사라지기만 기도할 뿐.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매뉴얼화 돼 기계처럼 돌아가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구든지, 어떤 것으로든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공동주택을 벗어나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주거공간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조용, 둘째도 조용. 마침 사막처럼 조용한 동네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밤 10시에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시지도 않고, 거실에서 다른 식구들이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으며, 주소도 다른 곳으로 해놓아 우체부든 누구든 불청객을 상대할 필요가 없고, 집안 온도는 내 맘대로 몇 번이든 만질 수 있고, 윗집이 없어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빨래는 내 방식대로 해서 내맘대로 넣어놓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행복했다. 그러나 나를 방해하는 것들이 공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나는 작업 이외의 어떤 일에도 시간과 정신을 소모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나만의 완벽한 성을 구축해 나갔다. 생활 속에서 나를 방해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무엇보다 옷이다. 외출할 때 무얼 입을까 고민하는 일, 내가 찾는 옷은 어디 있을까 신경 쓰는 일.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양말을 예로 들어보자. 양말이라는 게 웃긴 게 한 열 켤레 정도로 로테이션을 했다간 조금만 빨래가 밀려도 어느 날 신을 게 없어진다. 게다가 늘 한 짝이 어디론가 사라져 짝 맞는 양말을 찾다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나 많다. 양말은 항상 외출 직전에 신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의 기분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색깔과 디자인이 같은 양말을 열 세트씩 모두 50켤레를 구비해둔다. 그러면 어느 정도 양말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팬티도 마찬가지다. ‘칼빈클라인’ 팬티 50장을 늘 정돈해 두고 고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각종 바지, 트레이닝복, 수트, 셔츠, 티셔츠 등등은 모두 넉넉한 수량으로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 밖에 내가 쓰는 모든 물건들(스킨, 폼, 샴푸) 등도 언젠가 단종될 것에 대비해 미리 넉넉하게 사두고, 어딜 가든 가져가며 잠자리는 늘 같은 커버와 이불을 쓴다. 이렇듯 내 집에서 먹고 자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견고하게 시스템화 돼 있어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거나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작업에만 몰두하는 안정된 상태. 나는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행복하다. 피곤하지 않냐고? 전혀.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앞으로도 홀로, 모든 것이 방해받지 않고 안정돼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옷과 화장품과 기타 모든 생활용품들이 수량의 부족함 없이, 언제고 누구 하나 찾아오는 불청객 없이 그렇게.
※ 지은이의 국 영문 표기 및 띄어쓰기를 따랐음.
- 엘르 1월호...
http://www.elle.co.kr/elle/elleweb_template_fashion.iht?contId=B11_20100102_02005
새벽에 깨 회사에 일찍 와버렸다. 아직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오롯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샛노란 표지를 두르고 새침한 척하는 이 책의 제목은 ‘가장 보통의 존재’. 책장을 열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금세 읽어내렸다. 두런두런 말을 거는 듯한 글에 홀랑 넘어가서. 그리고 지은이의 일상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건, 지은이 이석원이 직접 들려주는 자기 이야기다.::이석원, 철두철미한, 감각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 사적인, 내밀한, 일상적인, 집, 작업실, 공연장, 일상, 여가, 휴식, 독서, 서적, 소설, 엘르, 엣진, elle.co.kr::
우리 집은 작지 않았다. 다만 식구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방은 네 개였는데 식구는 아홉 명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누나 셋, 나, 그리고 아직 시집 안 간 막내고모. 이렇게 아홉 식구가 네 개의 방을 쪼개고 배분해 함께 살았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 구체적인 방의 배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엔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혼자 지낼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깜찍한 생각 같은 건 별로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누나들이 학교엘 가고, 어른들도 어딘가로 나가시고 나면 거의 혼자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내게 집은 대체로 적막했고 결코 번잡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저 방에서 이방으로 부유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저녁이 돼 식구들이 모여들고 함께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대가족 제도에 별로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식구가 없다면 외로워서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는 편이었다. 저녁을 먹고 밤 아홉 시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불을 까셨는데 세 사람이서 자는 방에 원앙금침 이불 세 채가 놓이면 방이 가득 찼었다. 밤이면 우리는 AFKN 방송까지 다 보고 나서 새벽 한 시경에 늘 함께 잠이 들었다. 그때 안방 귀퉁이 작은 공간에서, 잠들어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며 늘 이 생각 저 생각하고, 꿈꾸고 공상하던 시절은 충분히 행복했었다.태어나서 처음 내 방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4학년 때쯤이었을까? 고모가 시집을 가고 큰누나가 독립을 하는 바람에 일곱 식구가 된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가 당연히 한 방을 쓰셨고(엄마방),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방’에, 그리고 미술을 하는 둘째누나는 짐이 많았으므로 ‘작은방’ 하나를 통째로 쓰고, 조금 길이가 길었던 ‘가운뎃방’을 막내누나와 내가 반을 갈라 쓰게 됐다. 어느 날 방 한가운데 정 합판으로 벽을 세워 올리고 ‘썬퍼니쳐’ 책상과 ‘보루네오’에서 만든 작은 책장이 놓여진 내 방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이 생각난다. 비록 저 합판 너머로 누나가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을 따라 부르며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생생히 들리던, 청각적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처음 홀로 잠들어야 했을 때의 호기심과 기쁨, 할아버지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됐다는 서운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홀로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반쪽짜리 방에서 시작한 홀로살기 이후 30년. 나는 지금 방 세 개짜리 단독주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사실 나는 원래부터 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로망을 갖거나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혼자 지낼 때만 해도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때문에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봤지만 일과 내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와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성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나는 실내온도에 너무나 민감해 차를 타면 30초 마다 한 번씩 히터나 에어컨을 조절한다. 껐다 켰다가 다시 껐다 켰다가…. 그 짓을 집에서도, 무대에서도 한다. 자연히 함께 있는 사람들이 힘들 수밖엔 없다. 또 나는 공동주택의 생활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소음도, 다른 사람들 귀엔 결코 들리지 않는 것이 내 귀엔 들려오고 그러면 마음의 평화는 깨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서 그 소리가 사라지기만 기도할 뿐.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매뉴얼화 돼 기계처럼 돌아가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목적은 '누구든지, 어떤 것으로든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공동주택을 벗어나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주거공간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조용, 둘째도 조용. 마침 사막처럼 조용한 동네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밤 10시에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시지도 않고, 거실에서 다른 식구들이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으며, 주소도 다른 곳으로 해놓아 우체부든 누구든 불청객을 상대할 필요가 없고, 집안 온도는 내 맘대로 몇 번이든 만질 수 있고, 윗집이 없어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빨래는 내 방식대로 해서 내맘대로 넣어놓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행복했다. 그러나 나를 방해하는 것들이 공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나는 작업 이외의 어떤 일에도 시간과 정신을 소모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나만의 완벽한 성을 구축해 나갔다. 생활 속에서 나를 방해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무엇보다 옷이다. 외출할 때 무얼 입을까 고민하는 일, 내가 찾는 옷은 어디 있을까 신경 쓰는 일.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양말을 예로 들어보자. 양말이라는 게 웃긴 게 한 열 켤레 정도로 로테이션을 했다간 조금만 빨래가 밀려도 어느 날 신을 게 없어진다. 게다가 늘 한 짝이 어디론가 사라져 짝 맞는 양말을 찾다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나 많다. 양말은 항상 외출 직전에 신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의 기분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색깔과 디자인이 같은 양말을 열 세트씩 모두 50켤레를 구비해둔다. 그러면 어느 정도 양말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팬티도 마찬가지다. ‘칼빈클라인’ 팬티 50장을 늘 정돈해 두고 고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각종 바지, 트레이닝복, 수트, 셔츠, 티셔츠 등등은 모두 넉넉한 수량으로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 밖에 내가 쓰는 모든 물건들(스킨, 폼, 샴푸) 등도 언젠가 단종될 것에 대비해 미리 넉넉하게 사두고, 어딜 가든 가져가며 잠자리는 늘 같은 커버와 이불을 쓴다. 이렇듯 내 집에서 먹고 자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견고하게 시스템화 돼 있어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거나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작업에만 몰두하는 안정된 상태. 나는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행복하다. 피곤하지 않냐고? 전혀.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앞으로도 홀로, 모든 것이 방해받지 않고 안정돼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옷과 화장품과 기타 모든 생활용품들이 수량의 부족함 없이, 언제고 누구 하나 찾아오는 불청객 없이 그렇게.
※ 지은이의 국 영문 표기 및 띄어쓰기를 따랐음.
- 엘르 1월호...
http://www.elle.co.kr/elle/elleweb_template_fashion.iht?contId=B11_20100102_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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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말할 수 없는. 어떤 이야기.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어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