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제. 아니. 이제는그저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우울한 마음은 극에 달하여 급기야 바닥에 도달했다.
잠을 조금 못잤을 뿐이고.
오랫만에 음악을 귀에 가득 담았을 뿐이고.
그저 잠시 멍...하니 지하철 역에 앉아있었을 뿐인데..
툭. 하고 떨어진 눈물 한방울.
그게 계속 이어져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왔다.
자려고 누워도 멈추지 않던 눈물.
울면서. 조금 마음이 시원해지는게. 이젠 정말 마음먹을 때가 된거 같다.
애초에. 무엇에도 욕심을 잘 내지 않고, 잘 포기하는 터라
오히려 ㅡ 그 반작용으로 한번 내 것이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잘 거두지 못한다.
그 대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내가 싫어하는 내 성격.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쩌면 내가 버릴 수 없어하던건. 그에 대한 사랑. 아니 그 마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졌던 내 온순한 마음.
나도 몰랐던, 그리고 나도 놀랐던. 그런 따뜻한 마음.
늘, 메마르고. 척박하고. 그래서 나조차 나를 외롭게 했던 시간들.
그저. 내 존재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시간들.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조차. 외롭고. 춥게 만들었던.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아무도 사랑해서는 안되는. 그저 혼자 버텨야 하는 그런 인생인거라고 체념하던 나날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해도 좋으니. 혼자여도 좋으니.
그냥. 내가 나를 인정하게만 해달라고. 나 그냥 타고난대로 살아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해달라고. 대상없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기도했던 나의 이십대.
간신히. 아무이유가 없어도.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냥. 살면된다고.
내가 원하는 걸 조금씩 해봐도 된다고. 그래도 잘못하는 거 아니라고.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겨우 겨우 그렇게 마음먹게 되고...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냈던 어느 때쯤.
나도. 따뜻해도 된다고.
나에게도 온기라는게 있다는 걸 알게해주었던 너의 체온.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그러니까. 외롭지 않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있게 해주었던 너의 따뜻함.
그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그 표정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던 기억.
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온전히 함께하고 싶었던 기억.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내가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
행복하다고. 그래서 비명이라고 지를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불안했던 마음.
역시나.
...역시나..
언제가처럼. 나에게 사랑의 끝남이란 그저 딱 그만큼의 덜어냄이 아닌게다.
차가운 문.
무서운 기분.
나 지금 이 따뜻한 방안이 너무 좋은데.
눈보라가 몰아치는 저 문 밖으로 나가라고
등 떠밀리는 기분.
나. 안나가겠다고. 이 방이 내가 머물 곳이라고 말해보지만.
요구하는게 익숙하지 못한 나는. 맥없이. 눈치만 보다가.
문을 열고. 문 앞에 선다. 일단은.
아. 춥다.
또다시 안간힘을 써서, 내가 나로 버티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라서
그래서 무섭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기분.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 그의 따뜻한 체온을 더이상 느낄 수 없는 지금.
내가 아니려고 해도. 이미 춥고. 또 춥다.
닫히는 문 사이로 빼꼼히 방을 들여다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어지는 중.
점점 닫히는 문.
내가. 내 손으로 문을 닫는다.
나는 다시.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이젠. 발거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기.
그저. 원래 가던 길을 가기.
잠깐 몸을 녹이던 기억.
그 조차 잊기.
기억때문에 내가 가는 이 길이 더 추울 수 있으니까.
이제는. 슬픈 노래에 감정을 이입하지도 않고.
함께 걷던 길을 걸으면서 혼자 걸으면서 '왜. 냐고 되묻는 일을 하지 않고
그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의 사랑은 얼마쯤 끝났는지 묻고 싶어하지 않기.
어제 흘렸던 눈물로, 내 마음은 모두. 보내기.
그렇게 마음 먹는게 아니라. 이제 난 이미. 그런 마음.
<낙하하는 저녁>에서 리카가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다케오하고 두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하고 같이 잘 수도 있어."
라고 말했던. 그 마음.
이제 난.
니 눈을 마주치고 웃을수도 있고.
너와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가벼운 수다떠는 것도. 할 수 있어.
내가 다른 아무런 기대없이 사람들을 대하듯.
너도 그렇게 대할 수 있어.
내 경계밖의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내 모습으로.
처음에. 내가 너에게 그랬던것처럼.
너를 사랑했던 나는. 이제, 없어. 안녕.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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