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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일상다반사

[일상] 5월은 푸르른 날.

오월엔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로즈데이. 성년의 날. 부처님 오신날.
수많은 날들이 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념하고 축하하는 그 날들.

그러나 오월에 5.18이 있고, 5월 23일이 있다.

오늘은 5.18.
시장시절엔 파안대소 해주시고
대통령이 되고나선, 기념행사에도 참석안하시더니
이젠 총리 축사로 행사의 의미를 축소하고.
공무원들이 참석하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잡아가겠단다.

사족. 잘 기억 안나지만. 예전에 공무원 시험 공부할 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와 공무원 노조에 대한 주제가
한 때 행정학 주요 예상문제였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제 주제일까? 주제라면. 답지도 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써야하는걸까?

그리고 5월 23일.
작년. 서울의 무거운 짐을 훌훌 버리고 일주일 간 자연에 파묻히고자
친구 셋이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려
성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들은 소식.
"노무현. 자살했대" 라는 친구의 전화.

서울을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다가
그래도 오랫동안(?) 준비했던 올레길 여행이라  묵묵히 걸었다.
마라도의 작은 관음사의 소박한 영정 앞에서 잠시 묵념하는 것으로 대신한 채.

나는 유빠였고. 유시민을 따라가다 노무현을 알았고.
개혁국민정당으로 처음으로 정당이란 곳에 가입을 했었고. 자발적으로 그의 글과 연설을 찾아봤었다.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움직였던. 뭐 그래봐야 마음이지만.
선베들이 데리고 가던 구태의연한 집회 (물론, 그 의미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개인적 공감의 문제.
내가 그만큼 의식화 되지 못했던 탓일 수도 있고. 그런 방식으로 의식화되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고.)
에 실망해 별다른 대안없이 고시공부 하던 나에겐 반가운 존재였다. 그는.

물론 임기 내내. 파병. 한미 FTA. 여러 집회의 강경진압. 등으로
어이없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건 그도 어쩔 수 없는 현실세계에서의 타협이었을테고
그가 아는만큼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뭐. 내가 평가해서 잘잘못을 따질만큼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건 좀 더 공부해 봐야 하는 것이고.

그래도. 정치인들 입에서 듣기 힘든 말
"사람사는 세상' 을 위한 고민의 일환이었다는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죽어서야. 그 진심을 모두 드러내놓고 인정할 수 있다는게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난. 봉하마을을 가지도 않았고.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동시에 나는 봇물 쏟아지듯 쏟아져 나오는 그에 관련된 책들을 한 권도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지난 1년간 나는 신문도 거의 보지 않았고. 사회과학 서적을 들쳐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어이없은 총공세에 그저 헛웃음만 날 뿐.

근데. 지지난주 한겨레 21에서 보여준 4대강의 사진은 진심으로 무서웠다.
올해 2월. 그렇게 마음을 다치고, 찾아갔던 군산 선유도의 바닷가에서 받았던 따뜻한 위로가
생각나면서 이제 그런 공간이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이 슬펐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이유없는 로망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섬진강길이
아직 가보기도 전에 사라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군산 선유도



그러나. 나는 직장인 5년차.
이제 진정 소비의 즐거움을 알고. 좀 더 소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할만큼
세속적이 되고, 좀 더 천박한 욕심에 솔직해지느라 불평만 늘어난. 철없는 30대.
마음을 잃어도. 세상은 살아진다는 걸 알아버린 평범한 30대.

투사가 되고 싶지도, 될 생각도, 그럴 깜냥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그저 비웃는 것만으론 해결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꽃같은 젊은 생명을 바다에 뿌리고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적을 적이라 부르지 못해 분노한다는 시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2010년.
난. 최소한. 아직 가보지 못한 섬진강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함께 살고 싶게 될 사람과 함께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을 낳게 되면. 또 함께 걷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
시멘트. 바닥 걷는건. .....간지가 안난다. (흐음. 안어울리는 농담?)

그저 소비하는 삶에 대충 만족하며 살기엔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그리고. 점점 더 미안하게 만든다. 어떤 이가. 아니. 어떤 사람들이...

30년 전에.
그리고 1년 전에.
그리고 며칠전에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