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토익 점수가 나왔다.
410/415 = 825
완전 의욕충만해서 학원을 다녔으나 늘 그렇듯 용두사미.
결국 프린트물 한장 제대로 풀지 못하고 시험 본거에 비해선 참 잘봤다 싶다. ㅋ
이제 나의 마지노선은 800점대가 된건인가?
엉망진창 나의 영어실력 ㅋㅋ
담주 출장 다녀오면 공부할 시간도 없지만.
그래도 한주는 열심히 공부하고 5월 토익까지 한번 더 봐야겠다.
만료된게 신경쓰여 괜히 한번 공부해본 토익. 쩝.
난 역시 현실의 노예. 풋.
2. 청바지를 샀다.
기정이네 어머니가 주신 생일선물로 주신 상품권을 들고 가서 세일하지 않는 청바지를 사봤다.
샀다. 가 아니고 사봤다. 라고 표현을 한건 라고 표현한건 '경험치' 측면의 행동이었으니깐.
그동안도 뭐 살려면 못 살것도 없었는데 어쩐지 그냥 내 소비범위 안에 있는 어떤 선택이 아니었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청바지는 말이다. ( 술값은 잘도 쓰면서!!!!!)
지금보다 15살쯤 어렸던 때. 친구가 처음으로 입고 왔던 메이커 청바지를 보고
딱히 부럽다. 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건
어차피 우리집은 그런걸 사줄만한 형편이 아니란걸 알고 있었으니깐.
내가 소비에 무심한 그런 정신적으로 고양된 인간이어서 그랬던게 아니라
그냥 내 것일 수 없는 걸 바라지도 않는 나름의 생존법칙이었던게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때 '부럽다. 나도 가지고 싶다.' 라고 생각을 하거나
혹은 엄마에게 '나도 사줘' 라고 표현을 하는게 더 나을 뻔 했단 생각이 든다.
철이 든 것도 아니면서 한 쪽으로만 '웃' 자라버린 사춘기 소녀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 성장의 불균형으로 마음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배운 10대의 나는
20대의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웠던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제발 나이답게 크라며 매를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도 이중적 감정속에 혼란스러웠던게 틀림없다.
필요이상으로 철들어 버린 딸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팠을 거고
그러면서 꽤나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고단한 삶을 알고, 안쓰럽게 여겨주길 바랬으니깐.
여튼. 결론은. 청바지를 하나 샀다는거.
그게 리바이스 건 케빈 클라인이건, 아님 뭐. 매대에서 떨이로 파는 그 무엇이던.
나는 그냥 봄 가을에 입을 청바지를 하나 산거다.
3. 뿔테 안경을 컴백
1년간 잘 유지되어 오던 나의 다이어트 후 상태는.
마음편한 연애라는 매우 안정적 상태를 맞이하여
요요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다시금 얼굴에 돌아온 살은 '동안' 이라는 표현을 더이상 쓸 수 없도록
어딘지 모르게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다.
어쨌든 이건 2011년 5월 15일. 조금의 꾸밈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 나.
지저분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나의 방도 있는 그대로의 나.
4. 기정이 친구 결혼식을 다녀왔다. 기정이는 내 친구들과 잘도 놀던데 나는 역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쳤다. 만사 귀찮은 요즘. 캔미팅에서 늘상 함께 지내던 팀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도 버거워 그날 밤으로 도망치고
말아버렸는데 두 번쯤 본 사람들과 어색하지 않게 있는 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요즘의 내 상태론 말이다.
아마도 요즘. 나는. 내 인생 32살 중 가장 급격하게 성격이 변하고 있다.
소심하고 조용하고 개인주의적으로. 늘상. 모임. 단체. 그룹의 유지가 우선순위였던 나였는데
이제는 게으름. 휴식. 내시간. 내꺼가 중요해지고 있다.
아마도 이대로 늙으면 노년에 퍽 외로울거 같다.
그것도 그렇고. 또 하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식 끝나고 간단히 커피 마시는 자리엔 거의 다 커플.
결국 얘기는 연애 혹은 결혼생활. 혹은 관계에 대한 것들.
나는 나와 기정이의 차이에 집중하며 어느 부분에서는 갈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인간 개체 하나 하나를 놓고 봤을 때 기정이와 나는 꽤나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긴 그러니 우린 연애란 걸 하고, 함께 살아갈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는 건가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타인과 나의 차이점을 찾아내서 내 열등감을 변명하는
약간은 못된 버릇이 있는거 같다.
5. 회사를 다니지 않고 하루종일 놀 수 있다면 나는 하루 하루 어떻게 지낼까?
9시쯤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한시간쯤 타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고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나서 낮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간단히 저녁을 해 먹고 설겆이를 하고 나서 기타 연습을 한시간쯤 하고
산책을 나가 동네 한반퀴 돌고 나서 음악을 듣고 일기를 쓰고 11시쯤 잠을 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무엇을 해야하는 것도 없이
이렇게 한 1년쯤 살아봤음 좋겠다.
물론. 이게 지금의 내 방에서의 일상이라면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저런 일상의 1년은 지금 여기가 아니고 배낭을 메고 떠난 어느 곳에서의 일상이다.
살면서 여행하기. 여행이 일상인 시간을 1년만 보내보고 싶다.
런던에서 일주일. 에딘버러에서 2주일. 바비엥에서 일주일. 하노이에서 일주일.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길이 눈에 익고 시장에 과일을 사러 가면 말은 안통하지만 얼굴이 익숙해진 사람들이 생기고.
하나라도 더 보고 한개라도 더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딱 1년만 살아보고 싶다.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늘 강박관념에 밀려 결국 조악한 내 감상에 실망하고 마는 그런거 말고
지금 이 순간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요즘 너무나 여행책을 많이 읽은 탓이다.
현실의 나는. 여행책을 읽으면서 설레여하는 내 자신조차 부담스러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32살의 직장인 미혼여성.
아니 단순한 그것보단 이유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신을 더이상 어쩌지 못해
이제는 사람들 뒷담화나 하고 회사일에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그저 그런 볼품 없는 사람.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일게다.
내가 덜 발전된. 덜 가진 곳으로 가고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그냥 느리게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용서할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것일게다.
오늘의 반성문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