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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영화] 호우시절..

※ 스포일러..있을 수 있음. ^^

헤어진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람을 잘라버리는 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 그에 따른 여러 액션들은 도리어
헤어짐을 더 힘들게 했을 뿐, 그래서 사랑의 기억조차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릴 뿐
그 이상, 그 이하 아무것도 없었다.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소리쳤던 상우는 영화의 끝에서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인정한다..

난 허진호 감독의 이런 점이 좋았다.
사랑은 타이밍이고. 사랑의 순간은 전부이고,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건 변할 수 있고, 끝날 수 있고, 그리고 나서 각자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고 이야기하는게.

내가.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할 수도 있도록.
그리고. 내 삶에서 내가 가지고 가야할 것은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이지 그 사람은 아님을
알게해주었던 그가....좀 변한 것 같았다...

호우시절....에서는.


건설회사 팀장 박동하는 중국출장 중에 우연히 미국유학시절 친구 메이와 재회한다.
영화에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마 사랑하는사이였을 것이고,
유학생활 이후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랑은. 그 자리에 그 시절에 그냥 둔채.

그런 그들이 다시 마주섰다.
그 시절의 기억을 부정하며 사랑했던 사실을 잊은 것처럼 말하던 메이와
추억을 더듬어 그 시절의 감정을 되살리던 동하.
짧은 시간 속에서 그들은 다시 그 때의 사랑을 다시 되살린다.

그 때 그 시절의 찬란한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데이트.
한없이 넘치덧 햇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눈맞춤.
그들의 짧은 데이트를 지켜보기는 내내 나는 너무 조마조마했다.
너무 행복해보여서.  하지만 그 끝을 알기 때문에.
언젠가 그랬던 내가 겹쳐졌던 탓이겠지만,
그 때가지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 시절의 마침표를 다시 찍기 위한
하나의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대로 흐른다.
메이는 헤어졌던 시간동안 결혼을 하고, 쓰촨성 지진으로 남편을 잃는다.
그리고 그 슬픔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시 다가온 새로운, 되살아난 사랑은 그녀를 죄책감 혹은 미안함에 시달리게 한다.
동하와의 입맞춤이 그녀를 사시나무 떨듯 떨게 하고 만다.

결국 메이는 동하에게 '결혼했어' 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을 잃었어..' 라는 말은  생략한 채.....

............

내가 아는 허진호 식 영화는 여기서 끝나야 했다..
그렇게 어긋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두 명이 그려져야 했고.
중국에서의 짧은 조우는, 그저 어린 시절 습관과도 같은 감정의 반복이었을 뿐. 이었다고....
한번 끝난 사랑은.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랑이 변하듯. 감독의 사랑에 대한 시선도 변했나보다.

동하는 메이의 사정(?)을 알게 되고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하는 메이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보낸다.
아마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매이의 삶도.
그리고 자신과의 사랑도.

메이는 그 시절의 상징과도 같았던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고..
동하는 양복을 입은 직장인의 출장이 아닌, 메이만을 만나러 중국에 온다.....

....뭐 그래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럴 감독도 아니었을 뿐더러, 만약 그랬다면, 정말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을거다.

다만, 그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부터 계속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래도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본다.
동하가 사천에 출장을 가고. 거기서 메이를 우연히 보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 

사랑의 시작은 그렇게 우연히, 마치 누군가의 장난과 같은 거라고...

이 영화 한 편으로 감독이 갑자기 사랑의 변치않음을  이야기하고자 한건 아닐게다.
이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 처럼 끝나는 사랑을 다루는게 아니라
시작되는 사랑을 이야기한 영화
일 뿐,
다만, 그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한번 사랑을 했었던 사람들이라는 차이일 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들이 이번엔 좀 더 아름답게 사랑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그들은. 시작되는 연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