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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일상다반사

[일상] 일요일

나중에 언제가 기억할 때 2009년은 나에게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던 해. 로 기억될것 같다.
오늘도 그저 언니네 이발관을 보러 어린이 대공원엘 다녀왔다.
어제 봤던 공연의 summary 같았던 set list. 비슷한 멘트. 뭐 그래도 좋았다.
어렸을 적에 015B 에 빠져 혼자서 음악들으면서 얼굴 빨개졌던거 이후론 오랫만에 푹~ 빠졌다..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오빠한테 'CD 로 언니네 이발관 좀 구워줘봐!" 했더니
냉정하게 ' 좀 이런건 사서듣지?' 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간다. 오빠가 왜 그랬는지... 

 사연많은 유진박과 기운넘치는 인순이의 공연도 좋았지만 미안하게도 나의 관심밖....

공연이 끝나기 조금 전에 자리를 빠져나와
분당선을 타야하는 지선이를 8호선이 있는 잠실까지 데려다주고, 내친김에 나도 8호선을 타고 암사에서 내렸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보이는 '버거킹'에 들어가 와퍼주니어아이스커피를 한잔 샀다.
배가 고팠던 건 아니다. 이미 오므라이스를 한 접시 비우고, 맥주 한캔을 가볍게 마신 후였으니까.
햄버거를 먹으면서, 공연을 보러가는 길에 읽기 시작한 김민규의 '지구 끝으로' 를 다 읽었다.
'김민규' 라는 이름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 같은 구성의 책이었다. 

사진 몇장. 그리고 남미 여행에서의 100가지 단상.
조금의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굳이 지구를 뚫고 내려간 그곳에 닿아 있는 남미까지 여행을 떠난 사람이라면 끄적일 수 있는
메모와 상념, 낙서. 감상.
그리고  남미를 이미 다녀온 지선이 싸이 사진첩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사진들.
그럼에도 '저도 어른이거든요' 의 노랫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의 책이라 그냥 봐주기로 했다.
책값 15000원이 그의 감수성의 자양분이 되어서, 또다른 노래로 나를 감동시켜줄 때까지 기다릴마음으로.

책을 덮고, 언니네 이발관 5집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진심만 말하자.' 라고.

어쩐지 그 상황에서 해야할 것 같은 말들. 그 상황에서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하는 나를 비웃지 말고.
진심으로 내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하자고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다시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에게 과연 진심이 있었던가....'

생각이 막힌다. 답이 없다. 가방을 들고, 암사역에서 집까지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부르면서 걸었다. 아무생각도 안하는 사람처럼. 답답하지 않은 사람처럼.....좀 전에 먹은 햄버거가 목을 메이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MP3 하나를 들고, 아파트를 돌았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전곡이  다 돌아갈 때까지 걷고, 뛰고를 반복하면서.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부르면서.

'산들산들'을 들으면서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할 시간이 나에게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열아홉의 내가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스물 다섯이 넘어서야 알아채고, 얼마나 슬퍼했던가가 기억이 났다.
그리고 스물 일곱의 내가 얼마나 찬란했는가를 기억하고, 서운한 기분마저 느꼈던 지난 봄의 어느 밤이 생각 났다.

지금, 서른의 여름을 지내고 있는 나는. 서른 셋의 내가 그리워할 나 일게다.

나는 지금 충동적으로 햄버거를 먹은 댓가로 
오밤중에 아파트를 뛸만큼(평소와는 전혀 다른 행동임에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보낸 서른해가 진심이 아니었으면 어떤가? 이미 지나간 시간들인걸.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조각들인걸.
내일부터 진심이면, 그렇게 30년을 더 살면 된다. 그거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