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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잡다감상문

[영화]웰컴

2009년 프랑스 영화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에서 작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석원이 그의 홈페이지에서 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보통의존재> 로 교보문고 11월 첫째주 전체판매량 7위를 차지한 그가 추천한 영화.그는 왜 이 영화를 추천했을까?  영화를 보기 전의 궁금함은 이것이었고, 보고 나서도 궁금함은 여전하다.

17살 청년 비달은 이라크, 쿠르드 족이다. 현재 프랑스에 불법체류중이며, 영국으로 건너갈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는 영국에서 오래 체류했던 아버지 덕에 비자를 받아 영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때문에 비달은 그녀를 만나려면 영국엘 가야한다.

이라크에서 4000km 의 길을 걸어 프랑스까지 왔지만, 밀입국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비닐봉지에 대한 트라우마(영화 중에 나온다.)로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밀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그는 수영을 해서 영국으로 건너가기로 한다. 그리고 수영강습을 받는다.

수영을 강습해주게 된 시몽. 그는 한 때 400m 수영으로 금메달을 딸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였으나 현재는 부인과 별거 중이며, 영화가 진행되는 중 이혼을 한다. 아마도 이혼의 원인은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불법체류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진행하며, 깨어있는 의식으로 살고자 하는 그녀와 삶을 온통 무기력, 그 자체로 채색해버린 그는 아마도 헤어지는 방법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떠난다는 그녀를 그는 잡지 안았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비달에게 수영강습을 시켜준다. 그리고 비달이 헤엄을 쳐서라도 영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번쩍! 하고 정신을 차린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혼하자는 부인을 한 번도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비달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게 된다.

영화는. 조금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프랑스 영화의 특징인지, 아님 그 나라 사람들의 특징인지 특별히 크게 분노하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행동과 대사들이 조심스러울 뿐이다. 

스포일러이지만 내용을 조금 더 밝히자면, 비달의 애닮은 사랑은 결국 결말을 맺지 못한다. 전쟁 중인 나라의 돈없는 불법체류자에게 사랑은 애초에 사치이고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비달이 그토록 무모한 사랑을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불법체류자이면서. 영국에 가서 축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순진함 덕분이었을게다. 비달이 그 꿈을 얘기할 때 객석에서 쏟아지던 웃음은, 그 어이없는 순진함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비달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시몽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삶을 낭비하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마도 영화에서 끝까지 나오지 않지만, 시몽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어느날 갑자기 활기차고 소란스러운 사내로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영화는 불법체류자를 대하는 프랑스 정책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보단 인간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보다 일뿐. 이고, 개인의 삶은 사회적 제약속에서 무참히 꺠어져간다는 사실에는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삶이라는게 그 모든 조건하에서, 그 다음 시작되는 것처럼 비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갔고, 시몽의 삶도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불쑥 불쑥, 산다는 건 뭔지에 대해 궁금증이 들면,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숨을 쉰다는게 어떤 의미이고,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누군가를 만나 깔깔거리며 웃는 이 모든 것들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말이다. 반드시 내가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반드시 내가 존재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삶은 우리에게 '웰컴'이라고 인사를 해준다. 물론,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고 해서, 삶이 쉽다는 건 아니고, 항상 행복하지 만도 않다. 아니 어쩌면 한번도 행복한 순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주어진 악조건 속에서도 그냥 살아내는 것 뿐이다. 어차피 삶은 부조리 한것이니 말이다.  설령, 비달처럼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의미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단지. 그 뿐이다. 삶에서 필요한건.